[경일칼럼] 예술가는 왜 장소성에 집착하는가?
[경일칼럼] 예술가는 왜 장소성에 집착하는가?
  • 경남일보
  • 승인 2016.05.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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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생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조교수)
박능생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조교수)

 

장소는 시간이 개입된 공간이다. 장소는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며 관계를 맺는 곳이다. 장소는 개인들이 부여하는 가치들의 안식처이며, 안전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고요한 중심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근본 특징을 거주함에 있다고 보았다. 인간을 특정한 시간과 공간 안에 현존하는 존재라고 파악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 속에 개인의 취향과 역사가 배어 있는 곳이 장소이다. 나는 비일상적인 것들을 체험함으로써 땅에 대한, 공간에 대한, 장소에 대한 경험을 기록한다. 나의 장소가 아니었던 것을 도시를 걷거나 스케치 하며 공간을 체험한다. 그러면 그 공간은 ‘텅 빈’의 의미가 아니라 개인적인 체험과 이해가 축적되는 장소로서 나에게 경험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장소의 경험은 내 작업에 큰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김정호(1804추정~1866)의 지도제작은 어떠했는가. 백두산을 일곱 번이나 오르내리면서 발로, 눈으로, 마음으로 부딪혔을 경험들은 비록 그가 작가는 아닐지언정 여느 대가의 작가정신 못지않은 창작의욕이었다. 내가 느끼고 표현하는 장소는 단지 물리적으로 다가오는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간은 시간과 같이한다. 그 결과 공간은 내 몸이 존재하고 체험하는 존재론적, 현상학적 장소가 된다. 나는 이것을 ‘장소성’이라 부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작업들은 관념 산수도 실경산수도 아닌 ‘풍경의 장소성’이다. 내 발이 움직이면서 펼쳐지는 장소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나는 고정된 시점이 아니라 움직이는 시점, 즉 이동시점을 사용한다.

영국의 작가 데미비드 호크니(1937~·영국) 역시 사람이 보는 광경은 카메라의 원근법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총제적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거대한 풍경화나 사진 작품들은 시점을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피사체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움직이는 이동시점을 사용하고 있다. 나 역시 작업에 원근법적 시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리는 장소는 내 삶의 장소이며, 우리 인간들이 실존하는 장소로써 받아들여지고 표현될 뿐이다. 이러한 장소성에 관한 문제는 공간을 표현하는 작가로서 심도 있게 다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공간’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몸담고 사는 실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소성에 대한 논의는 철학, 건축학, 지리학에서 조금씩 다루고 있지만 아직도 깊은 논의는 이뤄지고 있지 않다. 더욱이 그림에서 개인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수많은 자연풍경과 실내, 환경을 표현하고 있지만 장소성에 관한 담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작가는 인간이 속해 있는 환경세계에서 단지 환경의 아름다움만을 보지 않는다. 그 안에 거주하는 인간을 담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의 작업은 인간이 실재하는 장소성에 관한 담론인 것이다. 그러나 ‘장소’라는 단어는 그리 명확하게 정의돼 있지 않다. 그러한 가운데 나는 건축가 함성호의 ‘장소’개념에 공감하며 이 글을 전개해 나가려고 한다.

 

박능생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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