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어머니, 꽃구경가요
[경일칼럼] 어머니, 꽃구경가요
  • 경남일보
  • 승인 2016.05.3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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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 (시인)
어머니, 꽃구경 가요/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어머니 좋아라고/아들 등에 업혔네/마을을 지나고/들을 지나고/산자락에 휘감겨/숲길이 멀어지자/아이구머니나/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봄구경 꽃구경 눈감아 버리더니/한움큼 한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산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김형영/따뜻한 봄날>

고려장 설화를 바탕으로 쓰인 시에 곡을 붙여 눈물같은 흰 두루마기 입고 덩실덩실 리듬을 맞추는 장사익의 절창은 ‘미안해요 어머니’ 속죄의 심정으로 절절하기만 하다.

가슴으로 먼저 알아차린 어머니는 당신이 버려지는 것보다 아들이 혼자 돌아가다 행여 길을 잃을까 그저 걱정스러울 뿐. 부모 속에 부처 있다는 말이 맞다.

오늘날 장수는 인간의 열망이지만 예전 먹고살기 힘든 시절 노인이 오래 사는 것은 죄악으로 여겼다.

때를 놓치고 아들의 등에 업혀 귀천을 향해 가는 노인의 한이란 패륜의 문화가 아니라 시대적·경제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다른이를 사귀는 것보다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심오한 고백을 하는 할머니, 턱이 틀어질 때까지 한국 드라마를 보며 눈물 콧물을 쏙 빼기도 하고 암선고를 받고는 알뜰히 모은 전 재산 은행잔고를 털어 녹색 재규어를 사면서 평생 이런 산뜻한 남자를 찾아 헤맸다는 것을 깨닫는 할머니, 언젠가는 죽으니 장수는 부질없는 것.

죽음에는 순서도 예외도 논리가 있을 수 있나. ‘사는 게 뭐라고’. 일본의 사노요코 할머니는 활기차게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내일 행복하기 위해서 오늘이 너무 고달프다. 그러므로 별로 행복했던 기억이 없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 같다.

살아갈수록 좋은 일, 즐거운 일을 만들어가는 마음가짐이 중요하고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어야 하는 이유들을 찾아야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남은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젊은 순간, 행복한 순간으로 남기를 인식하며 사는 것은 세월이 주는 힘일 수도 있고 나이듦의 미학이랄수도 있겠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예전 우리 어머니와 사는 게 뭐라고 자신을 우선적으로 챙겨가며 살 수도 있다는 오늘날 일본의 할머니는 시대적 배경은 달라도 격세지감을 느낀다.

도서관 언덕 보라색 등꽃이 한창이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며칠 전 제대한 아들의 말에 화들짝 놀란다. 죽는 게 뭐라고, 꼬장꼬장한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지 않다.

 
황숙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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