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도와 주세요
[교단에서] 도와 주세요
  • 경남일보
  • 승인 2016.07.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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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외남 (사천 축동초등학교 교사)
얼마 전 방과후 로봇과학시간에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 사정을 알아보니 한 아이가 잘못도 없는 옆반 아이 안경을 벗기라고 ○○에게 시켰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안경이 벗겨진 아이가 화를 내자 그 애가 조립해 놓은 로봇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는 평소에 말수가 적고 매사에 소극적이며 내성적이었는데 “친구가 시켜서 그렇게 했다.”고 그날따라 스스럼없이 말했다. 세 아이들을 불러 다툼에 대한 각자의 솔직한 생각을 나눴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하며 화해한 후 어머니들께 알려드렸다.

상담이 필요해서 아이 어머니께 허락을 얻었다. 작년 담임이었던 동료가 퇴근하면서 우리 교실에 잠시 들렀는데 “○○는 말을 잘 안 해서 어떤 이야기도 듣기 어려울 텐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먼저 ○○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인지 깨닫도록 했다. 그후 그동안 친구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게 하였다. 침묵이 흘러도 다그치지 않고 두 손을 잡고 기다리니 10여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의 말문이 열렸다. 1학년 때부터 자기를 놀리고 괴롭힌 친구들이 있는데 참았다고 한다. 참기만 했던 까닭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 때문이란다.

앞으로 그런 상황이 오면 참지 말고 도움을 청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도와주세요!”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연습을 되풀이했다. 그때 “무슨 일이에요?”라며 한 선생님이 달려와 교실문을 열었다. 그 순간 ○○의 얼굴이 보름달마냥 환해졌다. 오후 5시 40분,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을 시각인데 어디선가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니 너무나 놀랍고 반가웠던 것이다.

누가 나쁜 행동을 하라고 시킨다면 “안할 거야. 그건 나쁜 짓이잖아.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 너라면 기분이 어떻겠니?” 라고 당당하게 자기의견을 말하는 연습도 했다. 연습이 거듭될수록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자신감도 생겼다. “말이 너무 없어 걱정이었는데 3학년이 되니 표정도 밝아지고 말수가 늘었어요. 고맙고 죄송합니다. 싸운 친구 어머니께 전화해서 용서를 구했어요”라며 저녁상을 차려 놓았다고 손을 이끄는 어머니와 ○○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던 두 모자의 밝은 미소가 아이들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어 귀 기울여 주라는 듯 눈앞에 아른거린다.
 
서외남 (사천 축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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