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0)
  • 경남일보
  • 승인 2016.07.2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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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0)

무속에 대한 영험을 철석같이 믿고 사는 사람들은 많다. 딱히 어머니의 신앙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궁지에 몰렸을 때 가장 간절한 심정으로 매달리는 상대가 그의 구세주가 되는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아무리 죽어서 유명이 바뀌었다 해도 살아있을 때와 같이 집안 걱정을 하는 언니라면-. 어머니의 말대로 밤마다 언니가 보인 것은 어떤 기적을 예언하는 현몽이었을까. 어머니의 애원을 굳이 반대해서 오고 있는 행운을 막는다면 그 이상의 실수도 없을 것이다. 어차피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여행하기로 계획해둔 나흘간의 공백이 있지 않은가. 양지는 기꺼이 약발을 바로 받고 싶다는 어머니의 제의를 받아들여 일정을 바꾸기로 했다.

“간호사한테는 내가 다 말했다. 내 심정이 그렇당께 의사도 수술 시기나 더 늦추지 말고 그러라꼬 승낙을 했단다”

양지의 동의를 얻어내자 어머니는 병원 측으로부터 미리 받아놓은 외출 허가를 알려주며 어린애마냥 기쁜 표정을 드러냈다.

“니가 반대를 안하니깨 내 기분이 이리 날아 갈드키 좋은 걸 본깨 인제부터는 그저 좋을 끼다. 조짐이 너무 좋다”

수다스러운 여자처럼 양지의 등을 토닥거리며 어르는 어머니의 가벼워진 모습을 보자 양지의 기분은 맥이 빠졌다. 어머니를 위한답시고 간만에 세웠던 실하고 오진 여행 계획이 무산되는 허전함이다.

내일. 그렇다.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희망을 갖고 또 용맹스러워지는지 모른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주어지면 좋겠다. 하지만 양지는 아직 그런 기적을 바란적도 없고 맛본 경험도 없다. 빤히 아는 병을 가진 어머니가 당신의 내일에다 희망을 거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모처럼 서로의 뜻을 존중해서 집으로 오는 길에도 어이딸의 분위기는 또 엇나가는 의견으로 어색하고 화평하지 못했다.

안정고도에 기체가 진입을 하자 승차감 좋은 승용차를 탄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등을 기대고 앉았을 때였다. 마침 창 옆의 자리여서 끝없이 펼쳐진 창밖의 운해가 뛰어내려서 뒹굴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

“엄마 저 하늘 좀-”

낮은 탄성을 지르며 옆 좌석의 어머니를 집적하다가 양지는 손을 주춤했다. 도드라진 이마만큼 누구도 방해하지 못할 집념과 단단함을 보여주는 입술을 쫑긋 내밀고 어머니는 눈을 감고 있었다. 양지는 저의 속삭임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건만 어머니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안경점 앞에서부터의 연장인 것을 언뜻 상기해 냈다. 아버지 안경을 안 샀다고 아직도 꽁하게 맺혀있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옆자리의 사람들 때문에 지상에서는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운 하늘 세계의 장관을 눈뜨고 좀 구경해 보라고 설득에 필요한 많은 말들을 자제하기로 했다. 애초의 계획은 이렇게 껄끄럽게 버성기도록 짜진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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