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면 천천히 가도 돼"…영화 '걷기왕'
"힘들면 천천히 가도 돼"…영화 '걷기왕'
  • 연합뉴스
  • 승인 2016.10.20 16: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느림으로 얻는 행복…심은경 주연 새 영화
▲ 영화 ‘걷기왕’ 메인 포스터.
 산 넘고 꼬불꼬불한 숲길과 논길을 지나 두 시간 거리. 인천의 강화도에 사는 여고생 만복(심은경)의 등굣길이다. 그래서 만복의 아침은 남들보다 빨리 시작된다.

 선천적으로 차만 타면 멀미를 해 ‘토쟁이’라는 별명을 가진 만복. 바쁜 아침에도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걷다 보니 학교는 매일같이 지각이고, 수업 시간은 그녀의 취침시간이다. 옆자리 짝꿍은 그런 만복을 ‘바보’라 부르며 무시한다.

 그런 만복에게 담임 선생님(김새벽)은 걷는 경기인 경보를 권하고, 만복은 학교 육상부에 들어간다.

 하지만 죽기 살기로 육상을 하는 다른 부원들 속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은 일.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서 열리는 경보대회 출전권을 따냈지만, 더 큰 문제에 직면한다. 차를 탈 수 없는 만복은 육상부 선배와 함께 서울까지 80㎞를 걷기로 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여느 영화처럼 목숨 걸고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뻔한 결말로 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천천히 가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걷기왕’은 심은경의 독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23살의 심은경은 겉보기에는 한없이 낙천적이면서도 ‘다들 뭔가 될 것 같은 데,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닐까?’ 고민하는 평범한 여고생의 모습을 맞춤옷을 입은 듯 보여준다.

 심은경은 12일 왕십리 CGV에서 열린 ‘걷기왕’ 시사회에서 “어릴 때부터 연기활동을 했지만 다른 10대들과 마찬가지로 꿈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그동안 더 잘해야 한다는 데만 초점을 맞춰 스스로 여유가 없는데, 이 영화를 찍으면서 힐링이 됐다”고 말했다.

 ‘걷기왕’은 강화도의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녀의 이야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기성세대로 대표되는 만복의 아버지는 보충수업을 가는 딸에게 “사회에 나가면 보충이라도 있는 줄 아느냐, 다 실전이다”라고 내뱉는다.

 담임은 학생들에게 “더 꿈을 가지라”고 강요하며 자기계발을 끊임없이 주문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공무원이 돼서 칼퇴근한 뒤 맥주를 마시는 게 꿈”이라며 수업시간에 공무원 수험서를 펼친다.

 모두 한발이라도 앞서려고 뛰어가는 세상에 걷는 경기인 경보를 소재로 택한 점도 흥미롭다. 경보의 가장 큰 어려움은 “뛰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이라고 한다. 만복이 출전한 경보대회에서 한 선수가 먼저 치고 나가자 나머지 선수들도 결국 자신의 페이스를 잃고 순식간에 앞다퉈 속도를 내는 장면은 경쟁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해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의 얼개는 단조롭고 극적인 장치도 많지 않다. 그러나 만복이 꿈을 꾸는 장면에서 ‘상상중’이라는 자막을 붙이거나, 만복이네가 키우는 소의 시선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등 만화적 발상이 영화를 한층 유쾌하게 만든다.

 백승화 감독은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 조금 느린 속도로 가더라도 괜찮다는 위로가 담긴 영화”라고 소개했다. 20일 개봉.

연합뉴스




영화 ‘걷기왕’ 스틸컷.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