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이 산청 적벽산에 글을 남긴 사연
우암이 산청 적벽산에 글을 남긴 사연
  • 최창민
  • 승인 2017.03.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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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이 산청에 ‘적벽’을 남긴 사연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가 우암 송시열의 각자 ‘적벽(赤壁)’ 이 산청군 적벽산에서 확인되고 글을 새긴 배경도 함께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각자(돌 등에 새긴 글)는 지역의 극히 일부 인사만 소재를 알아 지금까지 정확한 위치, 글씨를 새긴 배경 등이 알려지지 않고 소문으로만 전해져왔다.

권유현 산청문화원 문화연구위원은 1일 “석각명문 편찬을 위해 산청군 신안면 적벽산을 답사하면서 우암(尤庵)송시열(1607∼1689)이 쓴 ‘적벽’ 각자를 찾았다”고 밝혔다. 권 위원은 각자 사진과 함께 위치 배경 등에 관해 상세히 밝혔다.

우암의 글씨로 추정하는 근거는 연재(淵齋)송병선의 문하에서 수학한 이도복의 기록이다. 이도복은 ‘우암이 해배돼 귀향할 때 이곳에 들러 남명의 시구 중 고학횡주적벽소의 뜻을 살려 손수 기록했다’고 했다. 연재는 강누마을 안동권씨 가문의 권병구와 친분이 두터워 적벽 옆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각자 위치는 신안면 강누마을 경호강변(적벽강)에서 볼때 적벽산 중앙 40m높이에 있다. 이는 적벽산에 있는 10여개의 각석 중 가장 높은 곳이며 산 위에서는 접근이 어렵고 경호강변 도로에서 우회한 뒤 겨우 오를 수 있다.

글씨는 크게 한자로 ‘赤壁(적벽)’이라고 새겼고 그 안에 붉은 도료가 칠해져 있다. 작은 글씨로 ‘임술지추칠월기망각’(임술 1682년)이라고 새겨 각자시기를 알리고 있다. 붉은칠은 단성면 강누마을에 살고 있던 조선 말기 유림 서인 중에서도 노론 측의 인물로 알려진 권극유(안동권씨)의 후손 권도희(90)옹이 젊은 시절 이 산에 올라 정비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암이 언제 왜 무슨 이유로 이곳에 적벽이라는 글씨를 남겼을까.

권 위원은 거제 해배 기점인 1680년 귀향길에서 친분이 있는 단성 강누마을 안동권씨 가문에서 며칠 묵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조선 조정의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로 영수격인 우암이 단성을 거쳐 간다는 소식은 노선을 같이한 지역 일부 유림들로선 크게 반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권 위원의 설명이다.

적벽이란 글씨를 쓴 배경은 우암이 권씨가문에 머물면서 남명 조식을 떠올렸고 그의 시구 중 ‘고학횡주적벽소’의 뜻을 살려 쓴 뒤 건넸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 우암이 실제 단성을 지나간 해인 1680년과 각자시기 ‘임술 1682년(조선 숙종 8년)’과 2년의 시차가 나는 것은 권씨가문의 위트로 추측했다. 즉 2년을 기다렸다 새겼다는 것인데 이는 중국 ‘소동파(식)의 적벽회고’와 시기를 맞추기 위함이었다는 것.

소동파의 적벽회고가 나온 시기는 1082년, 권씨가문이 적벽산에 새긴 날도 ‘임술지추칠월기망각’(임술년 가을 칠월 16일), 이는 1682년과 정확하게 600년의 시차가 난다. 실제 소동파의 적벽회고에는 ‘손님과 함께 배를 띄우고 적벽 아래서 노는데 바람은 서서히 불어오고 파도는 일지 않았다는 내용과 함께 임오지추칠월기망’이란 시기가 등장한다.

정리하면, 귀향하던 우암이 해배 시기를 전후해 단성 강누마을 안동권씨 가문에 잠시 머물면서 남명을 떠올려 적벽이라는 글을 남겼고 권씨가문은 2년을 기다렸다가 소동파의 적벽회고 시기와 때를 맞춰 경호강 맞은편 단성 읍청정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다 각자했다는 것이다. 경호강은 예부터 유림들의 놀이나 사색공간으로 적벽강이라고 불렸다.

이 글씨가 잊혀 진 이유는 하상정비로 인해 강누마을이 뒤쪽으로 후퇴하면서 보이지 않게 됐고 최근에는 완전히 잊혀 진 것으로 권 위원은 해석했다. 우암은 조선후기 정치계와 사상계를 관통한 성리학자. 국내 학자 중 유일하게 ‘자(子)’자를 붙일 정도로 역사상 가장 방대한 문집 ‘송자대전’을 남겼다.▶관련기사 10면 최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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