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설레는 입학식, 가슴 아련한 졸업식’ 흔한 말로 표현했지만 세 해를 보내야 그 풋풋한 청소년기가 어느덧 사라지고 또 다른 시작의 시간을 맞이한다.
“저 선생님 반 됐어요. 와~대박”하며 교무실에 뛰어들어온 순박한 여고생을 “교무실에선 조용히 쉿!”하며 무안을 주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정표현에 어색한 교사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상처가 됐을까 미안해진다. 그래도 늘 웃음이 떠나지 않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던 그 여학생은 고3 수능을 며칠 앞두고 수시 2단계 합격자 통보를 받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합격발표가 나면 좋아서 함성을 지르고 기뻐하기 마련인데 이 학생은 살짝 와서 “선생님 저 합격한 거 반 친구들에게 비밀로 해주세요”란다. “왜? 최종합격만 앞두고 있는데, 그건 합격이나 마찬가지잖아”라고 물었더니 “수능이 바로 코앞인데 제가 합격한 사실을 알면 친구들 공부에 방해될 거 같아서요”라고 말한다. 난 흐뭇한 마음에 그의 머리만 쓰다듬어 주었다.
그 학생이 수능 날 아침 고사장 앞에서 나에게 손편지를 전해줬다. 황당해하는 날 보며 크게 손을 흔들고 뒤돌아서 가는 모습이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다. 편지의 첫 구절은 ‘선생님 화내시면서 편지 읽고 계시죠? 어젯밤에 잠시 짬 내어 쓴 거니까 걱정 마셔요’라고 시작했다.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여고시절의 감회를 담임선생님께 전하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대학에 최종합격하며 학교를 떠나 틈틈이 대학생활 소식을 전해왔다. 방학이 되면 꼭 얼굴을 보여주고 간 그 친구가 대학 졸업을 하고, 자신이 희망하는 의학전문대학원을 가기 위해 또 공부를 시작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기를 반복하며 드디어 올해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어찌나 기쁘던지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울먹이는 목소리가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한 학생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은 부모님 다음으로 교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학생 저마다의 개성에 맞춰 알맞은 진로 진학지도를 하고, 각자의 인생설계에 지성과 인성을 겸비할 수 있도록 조금의 길잡이라도 돼야겠다는 사명감이 항상 어깨를 무겁게 하지만, 순수한 예쁨이 가득한 여고생들의 이유 없는 웃음소리에 다시 한 번 교사로서 책임을 다해야겠다고 반성해본다. 2017년 3월, 신학기로 어수선한 가운데에서.
이윤정(경해여고 수학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