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에 첫 발령을 받아 나는 지금까지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그래서인지 우연히 만난 옛 제자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해 미안했던 적도 많았다.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 만든 학급문집이 이 고민을 조금은 해결해 주었다. 학급문집에는 학교생활의 모든 것이 꾸밈없이 들어가 있다. 아이들의 반성문도 그대로 넣고 신나는 체육시간도 생생하게 기록된다. 10권이 넘는 학급문집은 지금까지의 내 교직생활 중 제일 소중한 보물이다. 문집 덕분에 나는 즐거웠던 일도, 괴롭고 슬펐던 일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늘 그렇지만 작년 문집에서도 많은 부분이 신나는 피구 이야기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문집의 피구 이야기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피구를 보상으로 받기 위해 일주일 동안 우리반 아이들은 일기도 잘 쓰고, 수업태도도 좋아야 한다. 덕분에 우리반은 수업태도도 최고라고 칭찬받는다. 이렇게 보상받은 피구를 하러 갈 때 아이들의 모습은 ‘나 행복해요!’ 그 모습 자체이다. 뭔가를 열심히 몰입하여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무엇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자리에서 나는 늘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맑고 따뜻한 아이들의 마음을 만나면서 나를 돌아보고 생각하게 된다. 잘해주지 못한 일도 많은데 아이들은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날 울게 만들기도 한다. 외교관이 꿈인 똑똑이 도경이가 마지막 헤어지면서 자기가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좋은 자리를 꼭 만들거라고 전화번호를 바꾸지 말라고 부탁했다. 부족한 게 많은 나를 큰 기둥이었다고 표현한 도경이, 할머니가 된 나와 즐겁게 만날 날이 오기를 바란다. ‘피구하며 즐거웠던 4학년 시절의 문집도 꼭 챙겨 오렴.’
난 참 행복한 선생님이다. 도경이는 올해 5학년이 된 첫날 자기소개를 하면서 작년에 제일 기뻤던 일은 오분선 선생님을 만난 일이고, 제일 슬펐던 일은 오분선 선생님과 헤어진 일이라고 했단다. 일이 많은 학년말마다 문집 만들기가 힘들어 그만둘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힘나게 하는 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남은 마지막 교직생활 끝까지 만들자고 다짐해 본다. 보고 싶을 때 학급문집으로 떠올려보는 제자들의 이름 하나하나는 힘든 학교생활의 큰 활력소이다. ‘늘 지켜보고 있을게.’
오분선(고성 대성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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