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7)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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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87)

“호남아, 네가 안 되겠으면 내가 어떻게 도울 테니까 늦기 전에 주영이 데리고 와. 아직 자기 보호력이 약한 어린애를 왜 낯선 곳에다 혼자 두는 거야. 그 황막한 심정으로 애가 누구랑 어울리겠어. 엄마는 얼마든지 자식을 양육할 권리도 있고 책임도 있어. 이런 말 내 입으로 하기는 뭣하지만 만약에 주영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그때 가서 어쩔래?”

“아예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빌어라, 빌어.”

화난 눈길로 흘겨보는 호남을 향해 양지는 더 간절해지는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호남이도 지지 않았다. 살아온 세월만큼의 연치가 있는 것이다.

“언니 니는 안 그럴 줄 알았더마 참 소견 통이 좁다. 자식들의 장래는 엄마의 잘못된 인생에 꼬리를 잡고 시작되는 기라. 엄마는 자기 책임만 생각했지 우리들이 인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우리들의 장래에 대해서는 소리 없이 앞 사람들 그림자나 따라가게 길들이고 가르쳐서 내비뒀던 거 아이가. 자신은 여자 몸인 게 지긋지긋하다면서 우리들한테 가르친 것은 맨 남자 잘 만내서 그 가문을 위해 헌신하고 살면 끝이 있다꼬만 했지. 자식을 열이 넘게 배슬었고 낳았으면서, 하나 끼이지 않은 아들을,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디리기 위해, 아들을 낳아 바쳐야만 가문에 할 일 했다는 그 사고방식에 얽매여서 자기 인생 뿐 아니라 딸들의 인생까지 암흑과 혼란 속에서 구제해 주지 못한 기라. 엄마는 이왕 무식한 옛날 사람이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는 아이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모 우리도 기회를 놓치게 되는 기다.”

양지는 호남이 듣기 싫어 딴전을 부렸지만 다시없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속에 든 말을 계속 불러냈다.



“돌아가신 추 여사님도 나를 볼 때마다 독신으로 사는 것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것 이런 것들은 사춘기의 청소년들이나 한때 빠져보는 유치하고 개인적인 일탈의지일 뿐이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지. 그럴 때마다 나는 대학교수님 같은 강의 그만 좀 하시라고 퇴박을 했고. 그렇지만 그치지 않았다. 생물들이 자신의 이세를 보는 것은 발전이며 진화라고. 그런데 우리는 그저 부모의 그릇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 정작 중요한 걸 흘려버리고 있다는 거야. 나도 한때 거울 앞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들여다보면서 계집애, 가시나, 딸이 될 수밖에 없는 억울하고 슬픈 육체구조를 울었던 적이 없었던 줄 아니? 하지만 생명에게는 자기 고유의 역할이 있음을 인지하고 긍정하는 것이 자기의 자존심을 지키는 거였어. 갑자기 윤택해지는 경제 때문에 우리들은 지금 엄청난 모순에 빠져있는거야. 동구엄마랑 너를 지지하던 젊은 엄마들 봐. 힘을 모아서 사회적인 불균형을 바로 잡을 생각들은 하지 않고 여자들은 왜 자기 속에 내재해 있는, 생명 관을 숙명적인 취약점으로 스스로 약자가 되는 건가. 나는 요즘 참 많은 것을 깨닫고 있어. 아무리 불량스러운 종자라도 싹 틔우고 잘 키울 수 있는 옥토의 능력에 대한 자긍심을 되찾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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