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3)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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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3)

“이렇게 큰 거짓말을 확인했는데, 이유도 안 듣고 곱다시 입 다물 사람이 어딨노.”

“솔직히 말해서 엄마 밑으로 다 쓸 요량 했던 돈인데 도둑맞았다 쳐도 안 되나.”

점점 뻔뻔하게 나오는 호남을 대적하고 서 있자니 절로 무릎의 힘이 빠졌다. 비실거리며 쳐져내리는 양지를 호남이 재빨리 껴잡더니 의자로 데려가 앉혔다.

“니 에나 여서 일하는 건 맞나?”

“이 단체옷을 보모 모르나. 아직 서툴기는 해도 꾀 안파고 제 일처럼 알아서 잘한다꼬 사장님이 인정한다. 오래 같이 일하자는 소리도 엊저녁에 같이 한잔 하면서 약속했다.”

“술까지 같이 마셔?”

해서는 절대 안 되는 실수를 저지른 듯이 바르르 꾸짖는 양지의 질문을 호남은 당당하게 받아냈다.

“언니는 회사 댕길 때 직원들 회식 한 번도 안 해봤나, 와 이라노?”

그런 호남이 얼른 그녀답잖게 자조적인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다.

“알겠다. 시에미 죽인 죄인으로 동네서는 쫓겨났고, 어린 자식까지 뺏긴 년이 이혼까지 당했으니 누가 나를 바로 보겠노. 앞으로 내가 우짤 것 같노? 모르겠쟤? 그게 내 앞날이다. 믿고 안 믿고는 니 자유니깨 알아서 하고, 바빠서 오래 못 비운다. 간다.”

선머슴처럼 툭툭 뱉어서 제 할 말을 마무리한 호남은 양지를 남겨놓고 저 먼저 성큼성큼 식당 쪽으로 가버렸다.

‘엄마, 제발 저 애를 좀….’

양지는 한숨을 쉬며 호남이 사라진 쪽을 향해 한숨을 쉬었다.

별 심각한 기색도 없이 넘기려는 호남이 괘씸하고 언짢았지만 못된 짓 했을지 모르는 어린애 다루듯이 다시 쫓아가서 추궁을 할 수도 없다. 고종오빠의 말처럼 호남의 바로 선 양심을 믿어야 한다. 어차피 날아갈 돈이라면 아버지의 예를 봐서라도 전전긍긍할 것도 못된다. 믿자하고 호남의 약속을 기다려 볼 뿐이다.

병원으로 돌아 온 양지는 황당하게 남아있는 불안을 단호하고 박력 있던 호남의 마지막 모습으로 쓸어버리려 애썼다. 그녀가 부적처럼 뇌이던 아버지 엄마의 딸이라는 믿음도 채울 수 없을 듯이 뻥 뚫린 가슴에다 버팅개 삼아 우겨 넣으며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도 했다.

“나한테는 누구 급한 사람이 있어서 빌려준다더니 언니한테는 그런 거짓말로 둘러댔는 가베?”

“오빠, 저 애가 정말 잘못되면 어떡해요?”

“그러게 돈이란 요물이라 좋게 쓰면 이득이고 잘못 쓰면 패가망신인데, 우리 좋은 쪽으로 믿고 기다려 보는 수밖에 별수 없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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