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똥 퍼 소 아저씨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교단에서] 똥 퍼 소 아저씨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05.1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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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 산자락엔 연분홍 복사꽃이 노란 황사 멀미로 채 머리를 흔들고 보릿고개의 허기로 ‘뻐꾹 뻐꾹’ 새 울음조차 목이 쉬었던 오후 나절, 부모님은 새벽같이 새미골로 못자리를 잡으러 나가셨다. 텅 빈 집들 사이로 배고픈 졸음을 깨고 지나가는 ‘똥 퍼소, 똥 퍼소’ 소리는 제 이름이라도 불러준 듯 정겨웠다.

“50년 전만 해도 진주에서는 똥을 이용해서 농사를 지었단다. 똥장군이라고 하면 힘센 장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똥을 담는 둥근 통을 말하는 거야. 지게 위에 장군을 얹고 다니면서 똥을 퍼는 일을 하는 직업이 있었지. 기다란 막대 끝에 바가지를 달고 똥을 퍼서 그 통에 담는 거야. 그때는 똥을 팔았거든. 그러니 똥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귀한 돈이었어. 아침마다 밖에서는 절대로 똥 누지 말고 꼭 집으로 돌아와서 똥을 누도록 하라는 어머니의 당부말씀을 들어야했지.”

옛날의 직업과 오늘날의 직업 그리고 미래를 직업에 대해 공부하다가 갑자기 등장한 똥이야기에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밝아지더니 돈을 벌 수 있었다는 대목쯤에서는 사발만큼 커진다. 구수한 냄새를 몰고 온 동네를 누비던 똥퍼소 아저씨, 남강변에서 빨래를 대신 삶아주던 아저씨, 버스 안내양 등은 우리들의 기억 밖으로 사라진 직업군이다.

“지금은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직업들이 20, 30년 후에는 사라질 직업도 있을 것이고, 또 새롭게 나타날 직업도 있을 것인데, 여러분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요?” 최고 학부인 대학까지 가서 힘들게 4년을 공부하고도 공무원 고시학원 앞에 길게 줄을 선 작금의 현실을 건너서 열 살의 친구들에게는 직업의 선택과 전망이 더욱 다양해지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오라이!’ 낡은 버스의 등짝을 ‘탕탕’ 두들기며 갈 길을 재촉하던 활기찬 그 목소리가 다시 듣고 싶다. 아침마다 듣던 칼칼한 그 목소리에 비좁은 버스 칸이 절로 넓어지고 성냥갑처럼 단정하게 정리되곤 했다. 울퉁불퉁 자갈이 깔린 비포장도로 위를 고장도 없이 누런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갔던 그 길, 그 시간들….

오늘은 반짝반짝 호기심으로 빛나는 열 살의 소년과 소녀들을 태운 채 먼지도 없이 ‘씽씽’ 달려가고 있다.
 
신애리(수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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