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준(지역부장)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때 그 능소화는 담장이 무너진 그 집에선 피지 않았다. 기다림과 그리움에 사무쳐 담장을 타고 넘는 능소화. 고고하면서도 넉넉한 주황색 꽃잎과 늘 푸른 듯한 저 잎새, 높은 줄 모르고 담장을 타고 올랐다가 다시 축 늘어뜨리는 저 넝쿨의 여유, 언제보아도 그대로인듯 눈에 밟히는데…. 늘상 다니던 길을 뒤로 하고 발길 닿는대로 걷다 마주친 능소화들. 담장마다 타고넘어 자태를 뽐내는 저 능소화는 그때 능소화는 아니지만 다잡은 마음을 자꾸 건드린다. 아직 버리지 못하는 몽상은 토지에 나오는 별당아씨를 향한 구천의 마음인지, 귀녀를 향한 강포수의 마음인지 아니면 목소리를 잃고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인지.
박도준(지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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