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 사랑과 창조의 삶
[월요단상] 사랑과 창조의 삶
  • 김귀현
  • 승인 2017.07.0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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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인간이 삶의 의지와 생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는 살아갈 힘이 없고, 삶의 의욕 또한 생길리가 없다. 의지와 의미는 아주 가까운 관계로써 의지와 의미가 없는 생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고 보는 사랑만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기도 하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의욕이 생기고 모든 일에 기쁨과 보람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랑은 건전한 판단력이나 식견(識見)에 으뜸가는 것이며 이것을 소화하지 못할 때 우리의 존재는 생기를 잃고 기쁨과 즐거움, 또 바라는 바의 꿈도 사라지게 된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그 무얼 갖지 못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텅 빈 것 같은 허전함과 아무런 뜻이나 가치가 없는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생의 기쁨과 활기와 의미를 되찾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직 사랑을 회복하는 반면 사랑하는 대상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랑은 신이 인간에게 준 아름다운 선물로써. 우리는 이 선물을 지혜롭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랑은 생명의 의지로써 가장 중요한 뿌리라고 볼 수 있다. 생명 의지의 표현은 창조의 의지이기도 하지만, 창조의 의지는 새로운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을 만들려는 노력이다. 창조 속에는 목적한 바를 이룬 기쁨과 생산의 보람이 있지만, 사랑의 창조는 생의 본질이요 목적이며 행복일 수밖에 없다.

창조에는 유, 무형적인 것으로써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고 하여 반드시 창조라고는 할 수 없다. 책을 읽거나 사색에 의해서 한 인간의 마음이 높은 경지에 이르고 정신의 세계가 점점 깊어지고 깨끗하게 되는 것도 하나의 창조라고 봐야 한다. 인간이 더 높은 경지, 새로운 세계, 한층 더 바람직한 생활로 나아가는 것 역시 훌륭한 창조라고 생각된다. 사랑과 우정과 대화와 신앙과 독서 속에도 창조가 있다. 새로운 걸 알고 느끼고 추구하고 성취한다는 건 얼마나 흐뭇하고 보람 있는 일인가.

창조에는 언제나 고통과 번민의 정신이 따르고 고통과 번민을 통해서만이 창조가 이루어지듯 노력을 하지 않고는 창작상의 좋은 작품이나 뛰어난 실적이 나타날 수 없다. 인간의 위대한 것, 바람직한 것, 가치가 있는 것은 노력의 산물이면서도 창조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충분히 익어 목적한 바를 이루는 것 모두가 창조에 속하기 때문에 성장과 성취, 원하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건 참으로 기쁜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건 사랑하고 창조하는 삶으로 이뤄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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