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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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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8  23: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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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485)

아버지는 쓰고 남은 호주머니 속 돈을 먼지까지 탈탈 털어 던지며 발광하듯이 길가에 세운 입간판까지 걷어찼다. 자신이 지금 몸 부지하고 있는 전세방도 오빠가 얻어준 듯이 계약서는 썼지만 사실 호남이 목돈을 댄 것도 모른다. 침구를 비롯한 간단한 생활 용구는 양지가 사준 것을 그나마 큰 자식노릇이라 인정하며 못이긴 척 토 달지 않고 넘기는 걸 딸들은 다 알았다. 딸들이 낸 속정까지 알고도 모른 척 시치미 떼는 걸로 자존심 지키려는 노회한 연치인 것도. 하지만 딸들이 만약 아들이었다면 달디 단 과육을 맛보며 자신의 본색인 거드름과 자만을 드러냈을 아버지가 그나마 양심치레는 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까지 딸들이 알고 있는 것을 아버지는 모를 것이다. 만약 단 한번이라도 딸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이 처란 운명의 자리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진솔한 변명 한 번만이라도 딸들의 어린 기억 속에 심어주었다면 어땠을까. 병아리 모이쯤의 용돈도 실상은 자식의 효심이 아니라 여자들의 여린 심성 그 외 별다른 뜻도 없는 것을 아버지는 모를 것이라 그녀들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날 호남의 전화를 받고 달려왔던 양지는 어안이 벙벙한 채 그냥 서 있었다. 아버지는 호남의 방에 있던 집기들까지 내동댕이치며 당장 업소의 문을 닫으라고 호통까지 쳤다. 어이없는 냉소를 머금은 채 이 모양을 주시하고 있던 호남이도 양지를 보자 고개를 내저으며 손을 끌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웃긴다. 자기가 아직도 어른 인 줄 아는 모양이지?”

퉤, 하고 침을 뱉은 호남이 주먹이 아프게 벽을 쳤다.

“예상 못했던 건 아니잖아.”

“그렇지만 무슨 염치, 무슨 이유로 저리 강하게 나오느냐고”

양지가 상호를 지은 호남의 ‘황금박쥐’는 주인이 다른 사업을 벌이기 위해 이 도시를 떠나면서 넘겨준 다방인데 인테리어를 마친 뒤 차 마시는 손님이 없는 밤에는 생맥주를 팔게 업종을 늘인 거였다. 호남은 특유의 융통성으로 기회만 있으면 업종을 늘였고 하는 일마다 도래한 ‘운발’이 들먹여지게 했다. 단불에는 얼음도 잘 탄다는 옛말과 같이 호남의 성세는 줄기차게 고도를 뻗어 시원찮은 매상으로 문 닫는 가게도 그녀가 인수해서 손만 대면 회복의 궤도로 올라섰다. 호남이 소위 ‘물장사’를 하게 된 연유도 그런 연장선에 속했다. 호남이 파리 날리는 다방을 인수할 때도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낭패스런 티를 보이며 신경질을 냈다.

“꼭 그런 일로 밥을 벌어묵을카나?”

마치 금지옥엽으로 기른 자신의 딸이 인생막장으로 타락이라도 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는 듯이 씩씩거리는 아버지를 그나마 침착하게 설득한 것은 양지였다.

“요즘은 세상이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아셔야지예. 제가 아는 사람도 부잣집 딸인데 양주가게를 해요. 외롭고 고단한 사람들이 자기 좋아하는 술을 마시면서 대화 하는 사교장소를 제공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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