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가을날 떠오르는 그리운 이들
[월요단상]가을날 떠오르는 그리운 이들
  • 경남일보
  • 승인 2017.11.1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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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찬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어느 가을날, 지난날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 숙여지고 눈길이 깊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사랑이나 미움이나 지나고 보면 모두가 잘못을 깨치고 뉘우치게 되면서도 왜 그렇게 그리워지는 것인지. 어쩌면 우리들 나이에 가슴깊이 스미어 젖어드는 빛에 맑고 깨끗한 마음자리 갖추고, 때 묻고 얼룩지운 지난날을 떠올려 보는 것도 진실하고 솔직한 자신을 만나기 위함은 아닐까?

누구에게나 앞일에 대한 소망과 열렬한 정열로 급히 달릴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의 젊음. 그래도 지나간 시간들은 알맞은 불행과 적절한 행복으로 물무늬 졌던 강물이었지 않았을까. 흐려진 물도 흘러가다 보면 깨끗한 물이 되듯 아픔과 괴로움도 때가 지나면 더 많은 웃음을 갖추게 된다는 이치를 깨닫고, 비로소 발걸음 멈추며 깊고도 그윽한 눈을 들어 여유롭게 하늘을 우러러 보는 우리들의 삶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인간의 삶은 팔구십년, 얼마나 길고 무거운 것인가. 계곡을 돌아쳐 굽이굽이 흐르는 물처럼 늘 웃음 짓는 즐거움만 있을 수 없고, 꽃이 지는 슬픔과 아픔의 자리에 열매가 열린다는 평범한 눈을 뜨기까지 자연의 위대한 힘은 봄, 여름, 가을이라는 길고 긴 날을 거치도록 하지 않았을까? 이 가을날 소식이 없어도 살며시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이여, 사랑이나 미움이나 연민마저도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지만, 예측 못한 그 무엇처럼 뜻하지 않는 날 뜻하지 않게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우리는 깊은 밤 시끄러운 소리조차도 가슴으로 삭일 줄 알 만큼 가을 나이가 아닌가. 비록 외모는 주름져가는 모습일지라도 서로 두고두고 되새길 따뜻한 마음만은 깊이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자. 사랑도 우정도 거짓도, 진실도, 서로에게 삶을 기름지게 했던 좋은 밑거름이었음을. 이제는 인생과 예술을 귀중히 여길 만큼 그윽하고 서늘한 경륜의 깊이로 살아가도록 하자. 자신을 비우고 채우기 위해 비록 건네 줄 사람이 없어도 한 아름 가을꽃을 사 들고 기쁨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놓아보자.

우리쯤의 나이에 삶이 그늘져 어둑한 곳이 있을지라도, 영혼의 심지를 돋구어가며 진실로 용기 있게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자. 새로운 마음으로 사랑도 베풀고 받으면서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새롭게 얻어내도록 하자. 비록 늦어버린 깨달음이고 눈뜸일지라도 분명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지혜일 것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인생은 늘 새롭고 지혜로울 수 있는 것. 우리들 나이에 몸소 겪고 치러 보는 그 삶의 비결이 이 가을날 어찌 가슴 벽에 걸려 멈출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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