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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플러스 <209>고성 선유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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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8  14: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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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루떡처럼 생긴 바위지대.

어느 한 시절 이 땅에 와서 한평생 희로애락하며 살다가 홀연히 세상을 떠난 뒤 뒹굴며 뛰놀았던 마을 뒷산에 누워 영겁(永劫)의 미진(微塵)이 되려했다. 하지만 어느 날 화살처럼 날아든 생명의 씨앗이 뿌리 내려 친구가 되었다. 그로인해 이제 나는 또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아주 기묘한 생각이 들었다. 상석(床石)이 없었다면 산소인지조차 알수 없는 무덤, 그 묏등 위에 장수 허벅지만한 크기의 참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후손들이 찾지 않은 것인지 오랜만에 산소를 찾았는데 이미 커버린 나무를 벨 수 없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이 세상이 아닌 곳에서 나무 한그루를 키우고 있었다. 아니, 나무의 삶을 살고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이고 환생일까. 그래서 묘했다.

선유산(仙遊山·418m)은 고성 명산 중 하나로 영오면 연당리에 위치한다. ‘신선이나 선녀가 노는 산’이란 뜻을 가진 선유산에서는 정작 신선, 선녀와는 거리가 먼 땅의 기운이 느낄 수 있었다.

전설 하나,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던 선녀가 효성이 지극한 나무꾼 강수에게 반해 그만 하늘의 법도를 어기고 지상으로 내려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어느 날 강수는 병에 걸려 죽고 이 사실을 모르는 선녀는 매일 헛걸음만 치다가 결국 상사병으로 죽었다는 사연이다.

이 산에는 옥황상제가 선녀의 장례식에 보냈다는 상여바위, 선녀를 따라 죽은 시녀가 변한 띠바위, 시녀들이 쉬었다는 굴바위 등이 산재해 있다.

 
   
 


▲등산로: 고성 영오면 연당리 황새등→선유산 주차장→들평봉→소재봉(300m)→소재고개→상여봉→만날재→금굴(반환)→만날재→선유산정상→서나베이→양월마을→선유산 주차장 회귀. 9.6㎞에 휴식시간 포함 5시간소요.

▲들머리는 고성군 영오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영회로(1002번로)따라가다 보면 500m지점에 있다.

도로 가 오른쪽 흑색 돌에 선유산이라고 새긴 이정석이 서 있다. 산이 아닌 아스팔트 옆에 이정석이 서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산이 유일할 것이다.

이곳의 지명은 황새등. 진양하씨 선산으로 예부터 이 언덕에 무거운 짐을 실으면 황새가 날지 못한다고 하여 묘를 쓸때 비석을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 한국전쟁 때는 작전지역으로 사용됐고 최근에는 초등학생들의 소풍장소, 예비군 훈련장으로 쓰였다.

들머리 등산안내판은 낡았지만 등로를 상세히 기록해 놓아 편리했다. 처음부터 완만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주변에는 밤나무 지천이다. 한때 돈이 된다하여 대규모로 조성했던 밤나무단지가 수십년이 지나면서 고목이 돼가고 있었다. 밤밭을 지나면 갈참나무와 소나무지대가 나온다. 등산스틱에 참나무 이파리가 하나 둘 꽂혔다가 빠져나가기를 반복한다. 겨울로 가는 길목, 그러고 보니 우듬지에 달린 이파리보다 땅바닥에 깔린 낙엽이 더 많았다. 몇 기의 산소를 지나 40여분 만에 들평봉에 닿는다. 봉우리란 이름이 무색한 언덕이었다.

첫 봉우리 들평봉 높이는 357m에 불과했다. 과거에 수목이 없을 때 영오들녘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해서 들평봉이라고 했다는데 지금은 숲이 차서 전망이 별로 없다. 명당으로 알려져 묘지를 많이 썼던 곳이라고 한다.

앞서 가는 산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발길이 멈춘 곳은 상석이 빛바랜 산소 앞이었다. 묏등 위에 나무가 자라는 모습이 신기해 한참동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묵뫼처럼 밋밋한 건 소재봉(306m)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고성군 개천면 주민들이 진성장에 갈때, 영산리 주민들이 옥천사와 고성장에 갈 때 이용한 길목이었다. 보통은 재를 넘나드는 것이 정상인데 봉우리를 이용한 건 산이 낮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는 가난뱅이절터가 있다고 한다.

형제가 한이 맺혀 죽은 뒤 바위가 됐다는 형제바위는 주능선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산허리로 돌아가야 있다. 길이 없어 찾을 길은 없지만 겨울철 잎이 떨어지면 산 아래에서만 볼수 있다고.

상여봉으로 고도를 높인다. 경사가 완만해 힘들지 않은 산행이다. 상여처럼 생긴 암봉에 올라서면 적석산과 소곡산, 뒤로는 멀리 진주 월아산과 장군대산이 보인다.

20여분정도 더 주행하면 만날재다. 양월과 가천사람들이 넘나들었던 재이다. 때로는 양쪽마을 사람들이 만나 서로 안부를 묻기도 했고, 때로는 고독한 가을 나그네의 꿀맛 같은 쉼터이기도 했으리라.

만날재 갈림길에서 왼쪽 50m지점에 금굴이 있다. 말 그대로 금을 캐기 위해 파 들어간 굴이다. 길이가 100m에 달하는데 지금은 막혀 50m까지만 들어갈 수 있단다. 1971년 한 업자가 금을 캐기 위해 팠지만 헛탕을 쳤다고 한다. 가로, 세로 1.5m×2m인 굴속으로 5m정도까지 들어갔더니 천장에 박쥐가 붙어 있었다. 어두컴컴해 공포감이 들었다. 금굴 입구에 무게가 자그마치 1t은 돼 보이는 굴착기가 녹이 슨 채 방치돼 있었다.

 
   
▲ 금굴 입구 모습.


이 굴착기는 당시 양기마을 청년 20명이 20만원을 받고 메어 올렸다고 한다. 1인, 1만원꼴로 당시 자장면 한 그릇이 100원, 현재 5000원정도 하는 걸 감안하면 일당 1만원은 현 시세로 대략 1인 50만원 쯤 된다.

만날재까지 되돌아 나와 된비알을 오르면 선유봉 정상이다. 정상석을 기준으로 입구에 벤치가 놓여 있고 더 들어가면 나무로 만든 평상이 설치돼 있다.

억새가 군락을 이뤄 피어난 정상에서는 진주 방어산과 오봉산 함얀 백이·숙제봉이 보인다. 이 곳 어디쯤에 오래된 금포구나무(느티나무의 사투리)가 있었고 선녀와 강수가 만나 사랑을 나눴다고 한다. 이 슬픈 사연을 담은 노래가 이 지역에서 불리고 있다. /선유산 정상에 한 그루 금포구나무/선녀가 강수총각 꾀어서 놀았다네/서로 좋아 상사병에 걸릴 줄도 모르고/애답도다 애답도다 사랑이 무엇인지/희미한 가을밤에 달님도 웃고 있네/

하산 길은 완만했던 오름길과는 달리 경사가 급해 주의가 필요하다. 사랑에 빠진 선녀가 인간들에게 발견되지 않게 산 중턱에 선유산을 감싸며 시녀들을 배치했는데 선녀가 죽자 같이 따라 죽었다는 띠바위를 지난다. 띠를 두른 듯한 암석층이 산 중턱을 가로지르고 있다.

곧이어 서나베이에 닿는다. 허리돌리기 등을 할 수 있는 운동시설이 산에까지 올라 와 있다. 누군가 나무에 매달아놓은 그네가 눈길을 끈다. 오랜만에 타보는 그네는 마력처럼 동심으로 데려다 준다.

이후에 나오는 2개의 갈림길에선 왼쪽 길을 택해야한다. 능선 오른쪽으로 치우치면 출발지와는 자꾸 멀어지기 때문에 회귀하는데 도로를 걸어야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능선의 왼쪽을 바라보고 계속 하산하면 양호마을로 내려갈 수 있다. 양호마을에선 서쪽으로 영회로(1002번로)를 걸어서 수동마을 지나 황새등으로 회귀한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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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속으로
참나무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선유산 중턱의 낙엽길. 우듬지에 달린 나뭇잎보다 낙엽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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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굴에서 만난 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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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에 뿌리를 내려 자라고 있는 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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