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사종 향수병 걸리다
연지사종 향수병 걸리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3.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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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일본 도쿄도 아다치쿠 니시아라이에 ‘고치산 헨조인 소지지 절(西新井大師 總持寺)’이 있다. 826년경 홍법대사가 니시아라이에 들렀을 때, 역병에 걸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십일면관음상을 직접 조각하여 기원한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아랫배가 볼록 나온 나한상의 보호를 받으며 경내로 들어서자 잉어가 연꽃 사이로 노닐고, 더위를 피하며 연못을 내려다보라고 등나무 아래 의자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잉어에 눈을 떼고 고개를 들자 연못 너머 높다란 종루위에 종각이 있고 종이 매달려 있다. 일본 절에도 종이 있다는 친밀감에 걸음을 옮겼다.

종루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안내판이 있다. 제목을 〈일본과 미국의 우정의 종〉으로 영어와 일어로 작성되었는데 ‘이 종은 에도시대에 가장 알려졌던 종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군에 공출되었다가 전쟁 직후 미국 순양함 파사데나에 실려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 보내져 시청에 걸렸다. 1955년 6월 파사데나 시는 미국과 일본 사이의 우정의 증표로써 종을 일본에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친일미국인 부시넬 씨, 아사히 신문사 등의 도움으로 1955년 7월 25일 요코하마에 도착, 히비야 콘서트 홀에서 전달식을 가졌다. 7월 26일, 도쿄의 주요 거리를 통과하여, 니시아라이다이시 소지지 절에 안전하게 도착했으며, 종을 안치하는 환영식이 있었다.’

종루에 올라 종 주변을 살피는데 한국 종과 구별되는 것은 유두(종유)의 개수가 다르다는 것이다. 사방 네 개의 유곽을 두고 유곽마다 가로 세로 5개씩 100개의 유두와 유곽 사이에 2개씩 통산 108개의 유두를 달고 있다.

진주의 연지사종은 통일신라 흥덕왕 8년(833년)에 만들어졌다. 흥덕왕은 누구인가! 장화왕비가 죽자 “새도 짝을 잃으면 슬픔을 못 이기는데, 어찌 사람이 좋은 배필을 잃고 나서 무정하게 다시 부인을 얻겠는가!”하며 혼자 살다 유언에 따라 합장되었다. 1593년 6월 진주성이 함락되자 노획품으로 가져가 상궁신사 창고에 팽개쳐 두었다. 그림으로 보는 연지사종의 유두는 네 개의 유곽에 각각 9개씩이다. 연지사종 및 상원사종, 에밀레종은 공통적으로 명문이 있고 유두는 36개이다.

상원사종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안동현에 휴도리라는 귀부인이 살았는데 때를 몰라 일만 하는 백성들이 가여워 종을 만들어 안동현에 기증하고자 한다. 종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심을 하다 꿈에 선녀 36명이 나타나 노래를 부르는데, 너무 애절하여 연유를 물었더니 지상에 내려온 남편을 부르는 소리라 한다. 선녀 대신으로 36개 젖꼭지를 만들어 4개의 유곽에 넣자, 종소리는 애절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듣고서 돌아오지 않고는 못 배길 소리가 되었다. 안동부 문루에 달고 종을 울려 시각을 알리게 되었다.

상원사가 세조의 원찰이 되자 ‘안동현 망루에 걸린 종에서 나오는 소리가 멀리 퍼지고 애절하다’ 하여 선택되고 종을 옮기는데 죽령 마루에서 깊게 울며 멈춘다. 운종도감이 난감해 하자 종지기가 “종유 하나를 원래 자리에 묻으면 되겠지요.”고 하여 종유 하나를 떼어 안동도호부 남문루 아래에 묻으니 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사연을 뒷받침 하듯 상원사종에는 35개의 유두를 볼 수 있고, 종유 한 개가 떨어져 나간 자국이 선명하다.

연지사종에 청녹 병이 번지고 있다고 한다(경남일보 2018.8.28.). 상원사종은 죽령을 넘는 것도 슬퍼서 주저앉았는데, 연지사종은 현해탄을 건너 캄캄한 창고에 갇혀 있다. 유두가 달라 이질감 속에서 오랜 시간 고국으로 돌아 갈 날만 기다리다 향수병으로 종신에 파랗게 녹이 번지게 된 것이다. 소지지 절의 종은 1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는데, 연지사종은 언제 쯤 돌아 올 것인가!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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