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유하리유적, 금관가야 대규모 마을터 발굴
김해 유하리유적, 금관가야 대규모 마을터 발굴
  • 박준언
  • 승인 2019.04.10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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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발굴조사 공개 설명회 개최
고상건물지 등 생활시설 다수 찾아
김해 장유 유하리에서 금관가야(金官伽倻) 시대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마을터가 발굴됐다.

김해시는 11일 오후 2시 유하동 198번지 일원에서 ‘유하리 유적 발굴조사 공개설명회’를 개최한다고 10일 밝혔다.

198번지 일원에서는 지상식 주거지 4개동과 고상 건물지 2개동, 수혈(竪穴) 15기 등 생활유적이 상·하층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대형 주거지는 화재로 전소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가운데에 나무기둥 자리인 주혈(柱穴) 4개와 흙벽을 고정시켜주는 나무기둥인 벽주(壁柱)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특히 아궁이가 북서쪽으로 치우쳐 설치돼 있는 것이 확인됐는데, 이는 ‘조왕신을 차려놓은 것이 모두 입구의 서쪽에 있었다’는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기록과도 일치한다.

앞서 시는 지난 2월 27일 유하동 148-2번지(777㎡)에 대한 발굴 성과도 공개했다.

이곳에서는 조개무지가 쌓여있는 패각층, 대형 고상건물지 1동, 수혈건물지 1동, 수혈 1기 등이 발굴됐다. 이중 수혈건물지는 패각층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구역은 남해 등 다른지역을 조망하기 좋은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에 제사유적이나 방어시설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하리 유적을 정밀 조사하고 있는 (재)한화문물연구원은 조사지역(198번지·148-2번지)이 비교적 좁은 면적(1200㎡)임에도 여러 개의 대형주거지, 지상식건물지, 고상건물지, 수혈 등이 확인된 것으로 보아 이곳에 대규모 마을이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5일 열린 학술자문회의에서도 자문위원들은 “유하리 유적인 금관가야 중심지인 봉황동 마을과 견줄만한 마을 유적일 가능성이 높다”며 “향후 국가지정문화재 추진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보호와 정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유하리 유적은 정부국정 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일환으로 조사가 진행 중이며, 지난해 12월 13일 시작돼 이달 말 완료 예정이다.

박준언기자

 
김해 유하리 유적 198번지 구역 전경. /사진제공=김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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