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32]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32]
  • 경남일보
  • 승인 2019.06.1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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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운하 박물관
◇네덜란드인들의 자부심

요즘 우리네 일상에서는 종이 지도나 지도책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네비게이션이 생활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어디를 가든 기계에서 나오는 안내 음성에만 귀 기울이면 되다보니 길을 묻는 사람조차 보기 어렵다.

그러나 유럽에서 낯선 도시를 여행 할 때는 안내지도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유용하다. 지도를 읽다 보면 시내 중심가의 위치를 빠르게 알 수 있고, 관광지를 한눈에 파악 할 수 있어서 동선을 효율적으로 정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낯선 도로명과 건물들이 시야에 담김은 물론이고 길을 찾는 재미는 덤으로 따라 온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무료로 배포 되는 지도는 여행이 끝난 후 그 무엇보다도 오래 기억에 남는 훌륭한 기념품이 되기도 한다. 런던, 파리, 베를린 등 유럽을 대표하는 큰 도시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도시 한가운데에 큰 강이 흐르고 있다. 이 강들은 과거부터 각 도시를 성장할 수 있게 해준 큰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암스테르담 또한 암스텔(Amstel)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 되었지만, 긴 운하망이 도시를 감싸고 있다는 점에서 그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약 100㎞ 이상의 운하로 이루어진 이 도시는 약 90개의 섬과 각 운하 사이를 이어주는 1500여개의 다리가 여기저기 놓여있다. 특이하기로는 전 세계 도시 중에서도 손에 꼽힐 것 같은 암스테르담의 모습은 지도를 통해서 꼭 한번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암스테르담이 ‘운하도시’로 이토록 특별한 모습을 지니게 된 이유는 찬란했던 네덜란드의 전성기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하 도시

흔히 ‘북쪽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암스테르담은 운하의 도시, 상업이 발달했던 도시라는 점에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운하만을 가지고 두 도시를 닮았다고 하기에는 다른 점도 많다.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은 정부의 도시 확장계획에 따라 운하가 건설되었지만 베니스의 경우는 아니다. 또한 암스테르담의 운하는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운하의 수위가 관리 되지만, 베니스의 운하는 바다와 직면해 있기 때문에 물이 도시로 차오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의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로 몰려 들었고, 무역 거래를 통해 많은 부를 쌓은 상인 등으로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도시는 대대적인 확장공사에 돌입했다. 암스텔강에 둑과 제방을 쌓은 것에서부터 도시의 모습을 갖추었던 암스테르담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했던 것은 홍수에 대한 대비였다. 해수면 보다 낮은 저지대에 정착했던 네덜란드인들은 항상 바다나 강의 범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며, 물을 막아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운명을 타고났던 터였다.

도시 확장 계획은 크게 두 단계로 진행되었다. 사람들의 수요로 이미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한 도시 서쪽부터 확장 한 후, 다른 국가의 침입에 대비한 방어선과 해수면 관리를 위한 방벽이 완성되면 남쪽과 동쪽을 서서히 확장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운하 확장의 주요 계획은 암스테르담의 서쪽으로 크게 3개의 물길을 낸 뒤 운하 옆쪽으로는 거주 할 수 있는 집을 짓고, 도시 가장자리에 방어 역할과 수질 관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세워진 세 개의 주요 운하는 신사, 왕자, 황제의 운하 같은 이름이 붙여지며 (Herengracht, Prinsengracht, Keizersgracht) 도시를 둘러싼 부채꼴 모양을 형성했다. 우후죽순처럼 건설된 운하 옆 저택들은 통상으로 돈을 번 상인들의 소유가 대부분이었으며, 전문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 중심층도 더러 있었다. 한정된 운하 옆에 집을 짓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1인당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을 한정하여 배분했다. 건물들은 벽과 벽이 서로 맞닿아 있는 형태인 타운하우스 형식으로 건설되었다.

 
1657년 암스테르담 도시 확장 계획. 이 지도는 남북이 거꾸로 표시되어있다.


◇운하 풍경을 감상 할 수 있는 타운하우스

운하 옆에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모래와 진흙으로 이루어진 암스테르담의 지반을 튼튼하고 반듯하게 만들어야 했다. 건축가들은 스칸디나비아와 독일 등지에서 통나무를 가져와 질퍽한 점토 지반에 심었다. 이것을 땅속 깊이 심어 넣기위해서는 40여명의 사람들이 1시간 넘게 매달려야 겨우 나무 하나를 박아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암스테르담 도시 전체에 1100만개의 나무 기둥이 박혀 있다는 사실은 질퍽한 흙 위에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던 네덜란드인들의 투지와 욕망이 담겨 있다. 운하 옆의 건물들은 좁은 땅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공간의 효율성을 최대한 살려야 했다. 건물의 가로 넓이가 좁은 대신 공간을 깊게 만들어 긴 직사각형 형태의 집이 나타났으며, 집뒷 편에 정원을 만들었다.

건물 전면의 대부분은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겨울철 바람이 많이 부는 네덜란드의 날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창문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벽돌을 대신한 창문은 건물의 무게가 덜 나가도록 도와주었으며, 운하 옆에 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은 하루 종일 창문을 통해 아름다운 운하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또한, 변덕스럽고 궂은 날씨가 계속 되는 네덜란드에서는 햇볕 구경하기가 매우 힘들 기에 창문으로 통해 들어오는 한줄기의 햇볕은 사람들의 일상에 중요한 부분이었다.

 
 
진흙과 모래로 이루어진 지반에 나무기둥을 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기구


◇위태로운 건물들

운하 옆의 건물들은 보는 이의 눈을 의심 할 만큼 건물외벽이 옆으로 기울어져있거나, 앞으로 쏟아질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수직으로 뻗어 있는 아파트와 고층 빌딩 숲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기울어진 건물 수 십 채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옆으로 기울어진 건물은 세월이 흐르면서 지반이 약화되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중심을 잃은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동안 땅속에 박혀있던 나무가 썩어버렸거나, 무리한 증축으로 인한 하중의 증가도 한 몫 했다. 건물이 가장 많이 지어졌던 1600년대 집들만 하더라도 수 백 년은 거뜬히 넘은 집들이다보니, 견고하지 못한 지반 위에 똑바로 서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 할 것도 같다.

하지만, 건물이 앞으로 기운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첫 번째는, 그 당시 건축의 주된 양상이자 유행 양식을 따랐다는 것이다. 목조건축이 주를 이루던 중세시대에는 건물 위쪽이 점점 높아지는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452년 암스테르담에서 일어난 큰 화재로 나란히 붙어있던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자 정부는 목조 건축을 금지하고 벽돌로 건물을 짓도록 규제했다. 벽돌을 가지고 윗 쪽이 넓어지는 건축양식을 따르려다보니 지금처럼 건물이 앞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이 나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폴레옹이 네덜란드를 통치하며 건축제도를 바꾼 19세기 이후부터는 기울어진 건물이 더 이상 지어지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는 물건을 올리고 내릴 때 건물 외벽의 손상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무역으로 급성장을 한 암스테르담의 주된 거주자들은 상인이었다. 이들은 무겁고 저렴한 물건들은 건물의 지하창고에 보관하고 값비싼 물건들은 건물 꼭대기에 있는 다락방에 보관했다. 건물 앞쪽이 기울어져 있으면 물건과 건물의 마찰이 줄어들다 보니 외벽과 유리창의 손상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암스테르담 운하 박물관은 기존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긴 글 중심의 설명에서 벗어나 참신한 아이디어와 다양한 전시 방법을 통해 구성되어있다. 운하 확장 계획수립과 그 과정 등을 애니메이션과 홀로그램을 통해 흥미롭게 관람 할 수 있음은 물론,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와 프로젝터 화면을 통해 입체적인 관찰이 가능하다.

 
 
 


주소: Herengracht 386,1016CJ, Amsterdam

운영시간: 화~일 11:00~17:00

홈페이지: http://www.hetgrachtenhuis.nl

입장료: 15유로,12세 이하 7.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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