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225) 산청 백운계곡
명산 플러스(225) 산청 백운계곡
  • 최창민
  • 승인 2019.08.15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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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이렇게 덥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샌 왜 이렇게 더운지…” 해발 700m시골 산촌에 살았던 어린 시절은 한여름에도 그리 덥지 않았다. 높은 곳이니 당연한 이치이지만 같은 시기, 비슷한 하늘 아래 도회지에서 자랐던 친구들까지 “요즘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걸 보면 확실히 덥긴 더운 모양이다.

이 뜨거운 여름, 산행으로 더위를 잊는다면 믿어질까. 혹자는 “이 폭염에 무슨 등산이냐”며 타박할지 모를 일이다. 물론 덥긴 하다. 오를 때는, 그러나 정상에서 약간 비켜선 계곡을 찾는 산행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고지대여서 기온이 낮은데다 또 계곡으로 다가가면 기온이 3∼4도 정도 더 낮아진다. 손에 물을 떠서 얼굴에 물 한번 끼얹으면 땀이 식고 어느새 더위는 싹 잊힌다. 이는 어쩌면 과거의 고향 여름으로 돌아가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그 여름에 함께 뛰놀았던 또래나 형들과의 즐거웠던 일상이 떠오른다. 그러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거기다가 옛 선인의 발자취까지 쫓아가며 향취를 느낀다면 그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이곳에는 ‘남명선생장구지소(南冥先生杖之所)’라는 조식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과거의 여름에서 옛 선인을 만나는 행운이 기다리고 있다.

무더운 여름, 이번 주는 백색의 암반 위에 시원한 물줄기가 구슬처럼 굴러가는 계곡, 선인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산청 백운계곡을 찾아간다.


 
폭포와 담

 

▲등산로: 영산산장식당(산청군 단성면 백운로 51번길 228)옆 임도→차량통행 차단기→남명조식선생 장구지소→용문천→물레방아터→대형폭포→지리산 둘레길(목책)→쌍폭→운리갈림길→954m봉(반환)→영산산장 식당 주변 공영주차장 회귀.


▲영산산장식당 주변에 주차가 가능하지만 인근 백운교 건너에 있는 공용주차장이 편리하다. 초입에는 오른쪽에 계곡을 끼고 임도를 따라 오른다.

발밑 계곡엔 청의소(聽義沼)가 있다. 옳은 소리만 듣는다는 소 이름이다. 목욕을 하면 저절로 아는 것이 생긴다는 다지소(多知沼)도 있다.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불교경전 뜻을 담은 아함(阿含)소, 다섯개의 폭포 오담폭, 우리말 직탕소, 사실 이런 이름들의 소가 있다는데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는 알수 없다.

이곳에는 이름을 가진 것을 비롯, 알 수 없는 소(沼)와 담, 폭포가 20여개가 넘기 때문이다. 금강산의 화려한 상팔담, 하팔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백운계곡의 풍경은 아기자기한 멋을 자랑한다. 비스듬한 암반 위로 물이 흐른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도 있다.

일찍이 이를 알아본 남명은 백운동을 지리산 권역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여기에 반해 세 번이나 유람했다고도 하고 그래서 삼유동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전한다.

그 중 기억해야할 곳, 남명이 지팡이를 짚고 신발을 벗어 쉬었다는 남명선생장구지소가 나온다. 옆에는 용문천 각석이 새겨져 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이 지역 남명학파 유학자들이 남명 정신을 기리기위해 1893년 용문폭포에서 회합을 갖고 바위에 글을 새겼다.

후학들이 스승인 남명의 정신을 추모하던 일종의 문화공간이다. 이 외 영남제일천석 등천대 등 각석이 곳곳에 산재한다.

계곡 상부에서 지리산 둘레길을 만난다. 청계 단속사지에서 달려와 이곳을 지나 산청군 단성면 산천재로 향하는 지리산 둘레길 8코스, 운리∼덕산구간이다.

수 년 전 지리산둘레길 탐방 시 이 계곡을 건넌 적이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목책교량이 새로 하나 생겼다. 계곡 물이 불어나도 주행이 가능토록 정비한 것이다. ‘운리 6,2㎞, 마근담 1.9㎞’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천하 영웅들이 부끄러워하는 것은/일생의 공이 고작 한 뼘 땅 차지한 것 뿐/푸른 산에 봄바람이 부는데/서쪽을 치고 동쪽을 쳐도 미처 다 이루지 못 하네/


누군가가 계곡 건너 입간판에 남명의 시를 새겨 넣었다. 이곳에서 읊었다고 하는 유백운동(遊白雲洞·백운동에서 놀다)이라는 제목의 시다.

계곡의 이름 백운(白雲)은 반석으로 된 바윗돌이 흰 구름처럼 백색이어서 그렇게 부른다.

하얀색은 계곡에만 있지 않다.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에 그야말로 흰구름이 흘러간다.

/오, 보라/잊어버린 아름다운 노래의 낮은 멜로디처럼/구름은 다시 푸른 하늘 멀리 떠 간다/기나긴 여로에서 방랑의 기쁨과 슬픔을 알지 못하는 이는 흰 구름을 이해할 수 없으리/해, 바다, 바람과 같은 하얀 것/정처 없는 것들을 나는 사랑 한다/고향이 없는 자에게 그것은 누이이며 천사이기에…/

헤르만 헤세의 ‘흰구름’이다.

지리산 작가 최화수 씨는 “아, 백운동계곡! 목화와도 같은 순수 백색계곡의 경이로운 세계가 지리산 들목에 절묘하게 숨겨져 있었다니” 라고 했다.


 

폭포사잇길로 오르는 계곡산행
폭포와 담
어디쯤에서 산길을 포기하고 물길로 들어갔다.

등산화가 젖는 것은 대수롭지 않았다. 물 알갱이가 날리며 머리를 적셨다. 그 위로 무지개가 피었다. 쌍폭 주변에선 물소리가 요란해 사람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낡은 물레방아가 널브러져 있다. 낭만적인 풍경을 만들려고 오래 전 누군가 세운 게 수명을 다해 형체를 잃었다. 널빤지와 녹슨 쇳덩이만 박혀 있다. 변화무쌍한 계곡의 이야기는 한동안 이어진다. 백운계곡 총길이는 5㎞정도다. 물빛은 계절에 따라 바뀐다. 여름엔 옥빛이 주를 이루고 가을에는 붉은빛이 감돈다.

여름에는 계곡치기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방수 배낭을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물이든, 길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통과하는 별난 산행이다.

계곡은 자꾸 좁아진다. 오르지 못할 폭포가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산으로 우회해 다시 계곡으로 들어가야 한다. 더 이상 오르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계곡을 나와 등산로를 찾아 올랐다. 이때부터 땀이 많이 난다. 숲이 우거진 탓에 겨우 한사람이 통과할수 있는 길의 연속이다. 허리를 굽혀야 지날 수 있다. 마치 굴속을 통과하는 기분이다.

계곡의 상부 끝에는 954m봉이 있고 그 뒤로 달뜨기 능선, 그 너머 웅석봉, 그 너머 지리산이다. 6·25전쟁 때 빨치산은 지리산 구석에 있었다.

기울어 가는 전세, 국군의 좁혀오는 포위망에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그때 지리산 능선에 달이 떠올랐다. 달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떠올리며 향수(鄕愁)에 젖었다. 달이 뜨는 능선 그래서 달뜨기능선이다.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빠진 그들은 어느 진영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저, 그들이 넘고 가야할 능선을 무연히 비춰주는 달빛만이 희망이었으리…,

반환해서 내려오는 계곡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도시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물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남명선생장구지소

 
 
낡은 물레방아
둘레길 표지목
쌍폭
다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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