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나NIE 11-진주성과 느티나무의 생애
에나NIE 11-진주성과 느티나무의 생애
  • 김지원
  • 승인 2019.08.2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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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무와 함께 살아갑시다
진주성 느티나무를 추억하며

 

지난 6월 600살로 생을 마감한 진주성 느티나무를 기억하시나요. 진주성 서문의 비탈길을 올라가면 맨 먼저 반겨주던 큰 나무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네요. 진주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 나무가 살아온 600년 세월을 되짚어 봅니다.

 600살로 추정되는 진주성 느티나무는 나이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141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조선이 개국(1392)한지 스무일곱해가 지났을 무렵이군요. 느티나무의 나이가 600살 이었다면 처음 새싹이 돋아난 것은 조선의 네번째 임금인 세종대왕(1418~1450)이 즉위한 이듬해입니다.

 느티나무는 지금의 호국사 앞에서 처음 싹을 틔웠습니다. 호국사는 고려시대 만들어진 절로 내성사(內城寺)라는 이름이었지요. 고려말 승병을 기르기 위한 절이었고, 임진왜란 때도 승군의 근거지가 되었습니다. 조선 숙종 때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호국사로 이름을 지어 재건했습니다.
 
 느티나무는 쌍떡잎 식물로 느릅나무과의 낙엽활엽 교목입니다. 느티나무는 처음 50여년 동안 대부분의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경남과기대 산림자원학과 추갑철 교수는 “50여 년 동안 집중적으로 성장하고 키고 10m 이상까지 자랍니다. 그 이후로는 조금씩 옆으로 부피를 늘려가며 성장하게 됩니다” 라며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는 것은 나무들이 겨울동안 성장이 둔화되면서 나이테가 생기는데, 가뭄이나 병해충 등으로 잎이 부족해 광합성을 원활히 하지 못하면 위연륜이라는 가짜 나이테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라고 느티나무의 600살 정도로 추정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 정인지 최항 신숙주 박팽년 성삼문 강희안 이개 신선로 등과 훈민정음을 처음 만든 때가 1443년 이니 이때 느티나무는 24살의 한창 성장기에 있을 때군요. 1446년 반포한 훈민정음이 온 나라로 퍼졌을 즈음에는 진주성 느티나무 가지를 꺾어 흙바닥에 언문을 처음 써보던 아이들도 있었을테지요. 

 1592년과 1593년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가 벌어졌을 당시 느티나무는 이미 큰 나무로 성장 한 후입니다. 1차전의 김시민 목사도, 2차전의 서예원 목사도 느티나무 그늘 아래 쉬어갔을지 모를 일입니다. 

 1595년 경상감사 정사호는 임진왜란에 희생된 김시민 장군, 김천일 의병장 등 39명의 신위를 모신 창렬사를 세웠습니다. 느티나무 앞 호국사 바로 옆이었죠. 창렬사는 1607년 선조로부터 사액을 받았고, 고종 때 서원철폐에서도 제외된 47곳 중의 한 곳입니다. 

 진주성은 1604년 경상우병영성이 되었다가 1895년 고종 32년에는 진주관찰부가 설치됐습니다. 대한제국 건양 원년인 1896년 8월에 경상남도관찰사 감영이 되었죠. 그때부터 1925년까지 촉석루 앞에 경남도청이 있었습니다. 1909년 창간한 경남일보도 당시에는 진주성 안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외성을 헐어버리고 진주성의 외형을 심각하게 훼손 했지요. 느티나무는 그 시절을 버티고 진주시민들과 함께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6·25 전쟁 때 진주성은 촉석루가 불타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1960년 복원된 촉석루는 지금도 아름다운 모습을 남강에 비추고 있죠. 

 70년대까지 성내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69년부터 시작된 진주성 복원사업으로 750채의 민가가 철거되고, 1972년에는 촉석문이 복원됐습니다. 1975년에는 일제강점기 허물어졌던 내성의 성곽을 복원했습니다. 느티나무 인근에 진주박물관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탄생한 것이 1984년 이였죠. 진주성 성역화 사업으로 같은 해 성내의 민가는 모두 철거 돼 지금의 공원 모습이 되었습니다. 1996년에는 진주성 북쪽의 공북문 복원이 시작돼 2002년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지요.

 지난해 진주대첩광장조성지에서 외성의 흔적이 발견되고, 남문 추정지 등 추가 발굴작업이 이어지면서 진주성의 옛 모습이 드러날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이때 긴 세월 진주성의 역사와 함께 한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느티나무는 목재로 잘 쓰이는 나무 입니다. 목재의 결이 곱고 단단해서 가구를 만드는데 흔히 쓰였습니다. 주례(周禮)에는 ‘동취괴단지화(冬取槐檀之火)’라는 말이 있습니다. 겨울에 느티나무와 박달나무를 비벼서 불씨를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무 안쪽의 줄기부분은 바깥쪽이 점점 성장하면서 단단한 변재로 변화되는데 이 부분은 실은 죽은 부분으로 나무를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경상남도 문화재 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추 교수는 “진주성 느티나무는 안쪽 변재 부분이 썪어서 나무 속이 비어서 쓰러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추 교수는 또 “이렇게 오래된 나무들은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 관리가 되었어야 하는데 아쉽게 쓰러지고 만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느티나무가 쓰러진 후 진주시는 지난달에 진주성내 노거수 142그루를 점검했습니다. 우리 역사와 함께 살아온 노거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 입니다. 건축이나 조각같은 문화재도 소중하지만, 수백살 먹은 나무는 생명이 다하면 다시 되살릴 수 없기 때문이죠. 쓰러져 버린 느티나무는 2021년 진양호에 세워질 우드랜드에서 전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올해 유등축제에선 느티나무가 쓰러진 자리에 등불이라도 밝혀 느티나무를 기억하면 어떨까요.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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