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너나마루도서관 이야기
[경일춘추]너나마루도서관 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20.02.2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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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숙(수필가 어린이도서연구회회원)
 
 

 

“오늘은 이 책 읽어주세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여섯 살배기 아이는 오늘도 책 한 권을 내민다. 아이가 나름 고심해서 고른 책은 놀랍게도 6.5m 길이의 환상적인 아코디언 북 ‘과자가게의 왕자님’ 이다. 우리는 함께 앉은뱅이책상 여러 개를 적당한 간격으로 띄워 징검다리처럼 연결한 후 조심스레 책을 펼쳤다. 그리곤 둘이서 그림책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한참 동안 걷고 또 걸으면서.

아파트에 작은 도서관이 생기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유책장 만들기’다. 공유책장은 도서관 내에 공유 가정 도서 칸을 만들어 각 가정에 있는 책을 도서관에 가져 놓아 주민과 공유하는 제도다. 책 나눔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함께 작은 도서관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에 따듯한 마음을 보태는 이웃들이 있어 늘 고맙고 감사하다.

공유책장이 조금씩 채워지고 주민들이 기증하는 도서가 꾸준히 늘면서 작은 도서관이 점점 풍성해지고 풍요로워졌다. 추천도서목록자료집과 추천도서코너를 비롯해 액자와 소품 화분 등도 책장 구석구석을 메웠다.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책상과 의자를 비롯해 알맞은 크기의 푹신한 매트도 놓였다. 이 모두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을 만나 다채로운 빛을 발하는 너나마루 도서관의 매력적인 친구들이다.

중학생 아들의 방학일기를 들여다보다 공책의 마지막 장 위쪽 귀퉁이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무언가를 발견했다. “뭐지?” 읽기도 힘든 한 줄의 문구는, 마치 마법의 주문 같기도 한 그것은 ‘꿈꾸는 세상이 올 때까지 그때까지만 힘내자’였다. 뒤이어 무심코 휘리릭 일기장을 넘기다 ‘사소하지만 내 인생의 중요한 것들’이라는 제목의 일기를 발견하고는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에 잠겼다. ‘사소하지만 내 인생의 중요한 것들이라…’

그것들 중 하나가 작은 도서관에 가는 일이면 좋겠다. 게다가 ‘꿈꾸는 세상이 올 때까지 힘을 주는 곳’이 작은 도서관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나는 매주 작은 도서관에 간다. 책 대신 스마트폰을 보는 아이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하고 책을 권하고 책을 읽어준다. 가끔은 차나 물을 나눠먹기도 하고…, 두 아들은 이런 나를 보고 ‘사서 같기도 보모 같기도 한 엄마’라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정작 나는 모모를 동경해서 매순간 모모이고 싶은, 그저 모모 같은 주변인이자 이웃이고 싶다. 애오라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너나마루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모두가 힘(지식, 감수성, 용기)을 얻어 가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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