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 [244]비슬산
명산 플러스 [244]비슬산
  • 최창민
  • 승인 2020.06.0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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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참꽃 대신 유월의 녹음
비슬산(琵瑟山·1083m)은 국내 100대 명산 중 40∼50위권에 드는 명산이다. 대구 달성과 경북 청도, 경남 창녕에 걸쳐 있고 최고봉 천왕봉은 달성군 유가면에 소재한다. 대구에서는 ‘북(北)팔공, 남(南)비슬’로 부른다. 산세에 따라 팔공산을 남자에, 비슬산을 여자에 비유한다.

십 수년전 명산 취재팀은 이산 기슭에 있는 유가사에서 출발해 대견봉(현 천왕봉)에 오른 뒤 조화봉→대견사 터를 지나 유가사로 내려온 적이 있다. 당시 안개와 궂은 날씨 탓에 전망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형상을 닮았다는 비슬산 산세, 오른쪽 끝이 천왕봉이다.
최근 이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할 것이라는 소식과 함께 2014년에 최고봉이 대견봉에서 천왕봉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 이 산을 다시 찾은 계기가 됐다. 야당의 한 정치인이 대권 도전의사를 내비치며 비슬산에 오른 것은 며칠 뒤의 일이다.

산 너머에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구상한 장소로 알려진 대견사가 복원됐다. 이 절은 일제강점기 때 폐사됐다가 복원한 뒤 재차 폐사된 후 100년만인 2014년 적멸보궁, 요사채 등이 복원됐다.

비슬(琵瑟)은 한자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을 쓴다. 정상에 낟가리처럼 우뚝하게 선 바위의 모습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산 아래 유가사에서 보면 시방루(十方樓)용마루 뒤로 예사롭지 않은 바위산이 위용이 드러낸다.

해발이 1000m가 넘고 최고봉이 천왕봉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마지막 8, 9부 능선에서 급격히 치오르는 매력적인 산세를 자랑한다. 하지만 정상부근에 올라섰을 때는 갈대와 관목이 어울려 있는 평평한 고원이라서 반전이다.

산을 찾은 날은 안개와 미세먼지가 없는데다 찬란한 녹색의 숲이 융단처럼 깔려 싱그러움을 느끼면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산 위에서는 가깝게 달성군이, 멀리로는 경산시와 대구광역시가 내려다보인다.

 
비슬산

▲등산로; 유가사→도성암→갈림길→천왕봉→대견사 방향→마령재 갈림길→유가사 회귀. 8㎞, 휴식포함 5시간 소요.

 

유가사 시방루 용마루 뒤로 비슬산 암괴류 천왕봉이 우뚝하다.
명찰 유가사에서 출발한다. 유가사는 동학사 말사이다. 십 수년 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사찰을 중창하고 전각을 중수하는 이른바 불사(佛事)가 한창이다.

소나무가 주류를 이루는 등산로는 비교적 완만하고 선명해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다.

한 시간이 채 안돼 도성암(道成庵)에 닿는다. 이 암자까지 등산로 외 임도가 설치돼 있어 차량으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도성암
도성암은 유가사의 부속 암자이다. 해발 700m 지점에 있는 절로 선산 도리사(桃李寺)와 팔공산 성전암(聖殿庵)과 함께 경북 3대 수행 도량 중 하나로 꼽힌다. 산중에 위치한 아담한 절은 더 조용한 곳, 더 높은 곳을 찾는 불자들에게 매력적인 기도처이다. 수행스님이 있어 산행객은 절 마당을 가로지르는 일은 삼가해야한다. 길이 막혔을 뿐 아니라 스님들이 싫어한다.

도성암 명물 도통바위는 통행이 불가하다. 다만 등산로를 따라 우회해 오른 뒤 능선에서 약간 벗어나면 다가갈 수는 있다.

암자 주변으로 등산로가 여러 갈래여서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암자로 가지 않고 돌아서 올라가면 데크로 만든 계단을 만날 수 있다. 이때부터 고도가 급격히 높아지며 비슬산 산행의 묘미가 시작된다.

한 두군데 전망대가 나타나는데 주로 달성군 쪽의 광경이 내다보인다. 대구 시가지는 등산로 왼쪽 숲 사이로 가끔씩 보인다.

 
천왕봉 오름길에서 만난 소나무와 화강암. 이 사이로 등산로가 연결돼 있다.
등산로는 아름답다. 조경수처럼 생긴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하고 그 사이로 하얀 화강암과 암괴류가 군데군데 위치해 있다. 급경사 오름길의 숨 가쁨과 목마름을 상쇄하는 자연물이다.

도성암으로 내려가는 옛길에는 ‘출입금지’ 입간판이 있다. 이도 모자랐는지 철조망까지 설치한 걸로 미뤄 스님의 스트레스를 알만하다.

유가사 출발 2시간 만에 사방이 트이는 산등성이에 올라선다.

소나무를 비롯해 큰 키의 나무들이 사라지면서 밝은 하늘이 열린다. 그러나 천왕봉은 아직 400m밖에 있다. 일종의 고원 같은 지형이다.

길이 평평하니 등산객의 걸음걸이도 즐거운 듯 춤을 춘다. 고원 일대는 진달래가 주류를 이뤄 봄이면 온통 분홍빛으로 변한다. 그래서 이 산은 참꽃(진달래)의 산으로 부른다. 조화봉 가는 길 30만평에 달하는 평원에 피는 진달래는 전국구 진달래밭이다. 지금 진달래는 모두 지고 수줍은듯 앙증맞은 은방울꽃이 곳곳에 피어있다.

비슬산에는 천왕봉 정상석이 서 있었다. 예부터 비슬산 주봉은 천왕봉이었다. 1997년 지역의 일부 유림들과 주민들이 천왕봉에다 대견봉이라는 표지석을 세우는 바람에 이름이 바뀌었다. 그 뒤 2014년 3월 지역민들의 뜻에 따라 옛 이름을 되찾아 천왕봉으로 바꿨다. 대신 대견봉은 현재의 대견사 서쪽 1035봉우리로 옮겨갔다.

야당의 정치인은 최근 비슬산에 오른 뒤 이산에서 왕이 네사람 나온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그러나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의 행적이 있는 곳이라서 그의 기록과 관련된 것이 있는지 찾아봐도 왕에 얽힌 야사나 전설이 없었다. 알고 보니 비슬(琵瑟)이라는 한자에 임금왕(王)자가 네개 들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 것에 불과하다.

멀리 낙동강, 그 강을 끼고 있는 달성군 테크노폴리스 등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포산고등학교가 있는데 삼국유사 집필자 일연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그는 ‘내가 포산에 살 때’라는 글을 저서에 남김으로써 비슬산이 포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슬산의 유래에 대해 거문고 말고도 재미있는 사연이 전한다. 신라 때 인도 스님들이 비슬산에 왔는데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놀라 비슬이라고 했다. 비슬은 고대 인도의 신 ‘비슈누’의 범어(梵語) 발음을 소리로 옮겨 한자로 표기한 ‘비슬노’(琵瑟怒)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비슈누는 ‘덮다’라는 뜻이 들어 있어 비슬산을 ‘포(包, 苞)산’으로 불렀던 것과 무관치 않다.

반대편에는 대구광역시의 아파트단지가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인다.

 
도성암 도통바위. 관기스님과 교류했던 도성이 기거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석이 옮겨진 대견봉 대견사 쪽으로 향한다. 대견봉과 그 너머 멀리 산마루금에 볼록하게 도드라진 봉우리가 조화봉이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대견봉에 오는 2022년 6월까지 310억 원의 예산을 들여 2㎞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취재팀은 대견사 가는 길 중간에서 오른쪽 유가사로 방향을 틀었다.

십년 전 대견사 터를 찾았을 때는 삼층석탑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으나 수년전 불사를 완성해 현재는 어엿한 사찰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하산길은 골을 타고 내려오기 때문에 급하게 떨어진다. 비슬산 정상에서 유가사까지 1시간 남짓 걸린다.

유가사에 ‘찬 포산이성 관기도성’ 이라고 음각한 일연스님의 시비가 눈길을 끈다. 도를 통한 도성스님과 관기스님이 불교적으로 교류했다는 내용이다. 도성암 뒤 산에 박혀 있는 거대한 도통바위가 도성의 거처였고 10리 밖에 현재 관기봉이 있는 곳이 관기스님이 기거한 곳으로 두 스님은 나무들을 매개체로 안부를 전하며 교류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수줍은듯 길가에 핀 은방울꽃
‘비슬산(琵瑟山)에 왕이 네사람 날 것’이라는 말은 전설도 아니고, 한자 비슬에 ‘임금왕(王)자’가 내개 들어 있어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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