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07]여수 낭도둘레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07]여수 낭도둘레길
  • 박성민
  • 승인 2020.06.17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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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섬, 낭도둘레길
낭도, 귀에 익은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낭만적인 분위기가 섬 자락마다 펼쳐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낭만은 팩트적인 요소보다 정서와 분위기적 요소가 진하게 스며있는 게 특징이다. 낭만의 주체가 풍경이 아니라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낭만의 섬, 낭도둘레길>이란 말을 읊조리면 자욱한 안개에 덮인 낭도가 필자가 걸어가는 발걸음 따라 조금씩 제 몸을 열어 필자의 품에 안기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어젯밤부터 세차게 내리던 비가 아침까지 계속 오고 있다. 옷 젖는 것을 두려워하면 낭만을 즐길 수가 없다. 하지만 비가 너무 많이 올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진주에서 두 시간 가까이 달려 둔병대교 입구에 있는 전망공원에 닿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둔병대교와 낭도대교는 조형미가 매우 빼어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전남 여수시 화양면에서 고흥군 영남면을 잇는 총연장 17km 해양도로가 10년 정도 걸려 올해 3월에 완공되어 개통되었다. 여수시의 조발도, 둔병도, 낭도, 적금도 4개 섬 5개의 해상교량을 설치하여 팔영대교를 거쳐 고흥까지 이어진 이 ‘섬섬백리길’은 전라남도가 섬주민들의 교통불편을 해소하고 나아가 관광수익을 위해 기획한 역대급 사업이다.

낭도대교를 지나 낭도에 닿자, 내리던 비는 멎어 있었고 섬은 온통 안개에 싸여 있었다. 섬의 모양이 여우를 닮아 이리 랑狼 자를 써서 낭도狼島라 했다고 하니, 낭도는 이름처럼 예쁜 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 맞이하는 탐방객에게 자신의 멋진 모습을 안개 속에 감추었는지도 모른다.

 


신선이 놀다간 해안단애
낭도둘레길은 3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3구간을 다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오늘 걷기는 낭만을 즐기고 힐링하는 걸 목적으로 삼기로 했다. 낭만과 힐링은 속도가 아닌 여유로움이 빚어내는 소산이다. 그래서 여유롭게 낭만을 즐기기 위해 해식애 등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는 둘레길 1구간인 <여산마을-화정중학교 낭도분교-낭도해수욕장-낭도방파제-신선대-천선대-남포등대-산타바 오거리-장사금해수욕장-산타바오거리-낭도분교-여산마을 백년 도가식당> 4km를 2시간에 걸쳐 천천히 걷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여산마을과 낭도 앞바다는 안개에 덮여 있었다. 만나는 섬주민들과 잠시 인사를 나누며 몇 걸음을 옮기는 사이,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혀 있었다. 어쩌면 낭도가 탐방객들을 기꺼이 받아주는 것 같아 들떠 있던 마음이 한결 더 붕 뜬 기분이다. 마을 담벼락에는 <낭만의 섬, 낭도>를 알리는 문장과 예쁜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낭도섬 그림과 함께 ‘내 그리움은 반만 담아도 바다가 된다’라고 써 놓은 벽화가 눈에 확 들어왔다. 윤보영 시인의 시<모래와 바다>의 한 행이다. 이 한 줄의 시가 낭도를 찾는 탐방객들의 가슴에 낭만적인 정서를 가득 채우기에 충분했다. 안개는 더 멀리 벗어나 육지쪽 높은 산머리에 앉은 모습이 귀여운 여우를 닮아 있어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마을을 벗어나자 2013년 폐교 된 화정중학교 낭도분교와 캠핑장이 나타났다. 넓은 캠핑장엔 캠핑카 두 대가 덩그러니 있었다. 어쩌면 쓸쓸한 풍경일 수도 있는데 필자의 정서가 낭만적 분위기에 젖어서 그런지 몹시 다정하고 멋있게 보였다. 캠핑장을 지나자 광활하게 펼쳐진 낭도해수욕장과 잔잔한 바다가 필자를 반겼다. 조금더 걸어가자 길게 스크럼을 짠 낭도방파제가 바다 물길을 막고 있었다. 여산 앞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한 이유를 그제사 알았다. 바닷가 숲길을 걸으면서 내려다본 방파제와 바다 가운데 지친 파도가 쉬었다 가는 작은 섬, 그 옆을 지나는 고기잡이 배 등 모든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동백나무와 사스레피나무, 해송 등이 숲을 이룬 해안길을 걸으며 우거진 나무 사이사이 코발트 빛 피부를 드러내는 바다를 보며 감탄하고, 해안 단애에 부딪치는 파도소리에 귀를 씻는 순간순간이 매우 서정적이고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신선이 내려와 살만한 정도로 빼어난 풍경을 지녔다는 신선대는 해식애가 만들어낸 절경이다.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정말 멋있었다. 건너편 나로도에 있는 나로우주발사대며 천선대와 남포등대까지 이어진 해안단애가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거친 파도가 발밑까지 다가왔지만 누구 한 사람 무서워하는 기척이 없었다. 모두가 아름다운 풍경에 동화되다 보니 무서운 파도마저 다정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시 천선대를 지나 남포등대로 향했다.

남포등대로 가는 도중 해안가에 몇 개의 벙커가 눈에 띄었다. 해안으로 접근하는 간첩들을 잡기 위해 경계근무를 했던 초소인 것 같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우리 역사의 뒤안길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자, 하얀 남포등대가 해맑은 표정으로 필자를 맞이해 주었다. 늘 혼자 머물다 보니 사람들이 무척 그리웠던 모양이다. 등대 옆에 앉아 휘파람으로 등대지기를 불렀다. 내가 마치 등대지기가 된 느낌이 들었다.

허물어진 집에도 낭만이 산다
왔던 길로 250m 정도 되돌아오자, 산타바오거리로 가는 표지판이 있었다. 오솔길 아래로 펼쳐진 산타바 해안과 사도섬을 감상하며 걷다보니 금방 산타바오거리에 닿았다. 사방에 밭을 개간해 놓은 낮은 고개에 남포등대, 장사금해수욕장, 여산마을로 가는 길이 다섯 갈래로 나뉘져 있었다. 모래가 길게 비단처럼 펼쳐져 있다고 ‘장사금’이라 부른 장사금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돌담을 쌓아 낭도둘레길의 정취를 더욱 돋워주었다. 돌담길 옆에 허물어져가는 농가 한 채가 있었다. 드센 바닷바람으로부터 지붕을 보호하기 위해 그물로 슬레이트 지붕을 덮어놓았다. 그물에 갇혀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안 섬사람들의 지혜와 여유를 읽으며 여산마을로 되돌아왔다. 여산마을 백년도가식당에서 먹은 해초비빕밥도 도시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별미였다. 눈과 귀, 입과 코를 즐겁게 해 준 ‘낭만의 섬, 낭도둘레길’, 비록 두 시간의 짧은 트레킹이었지만 깊고 긴 낭만과 여유, 진한 여운을 건네준 힐링 시간이었다.

/박종현 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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