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53]오슬로 뭉크 미술관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53]오슬로 뭉크 미술관
  • 경남일보
  • 승인 2021.02.0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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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한 탓인지 모르지만 노르웨이하면 작곡가 그리그 (Edvard H.Grieg,1843-1907) 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유명한 작곡가들의 고향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유럽의 중심에 모여 있는 까닭에 그리그의 고향 노르웨이에 대한 호기심도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그는 그의 음악에 노르웨이의 민속 선율과 민요풍의 느낌을 흠뻑 입힌 민족주의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음악에서 그리그가 노르웨이를 알리는데 한 몫을 했다면 붓을 들었던 화가로는 뭉크(Edvard Munch,1863-1944)가 있다. 그의 가장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절규’는 화가의 이름보다 작품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뭉크가 남긴 말 중에 그의 생각을 가장 간략하고 단적으로 보여 주는 말로 여겨진다. 직접 보면서 초상화나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들과 다른 노선을 택했던 뭉크의 예술관이 궁금해진다. 아무래도 뭉크에 대해 속속들이 들여다보려면 간판에 번듯하게 그의 이름을 내걸고 있는 ‘뭉크 미술관’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뭉크의 절규

누구에게나 실제로 한번 보았으면 하는 그런 미술작품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뭉크의 ‘절규’가 그랬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 한 가운데에는 한 남자가 비명을 지르는 듯 한 모습을 하고 있고, 배경에 그려진 곡선들은 그림에 묘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음산하면서도 무언가 모를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이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소위 말해 힐링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림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마냥 궁금하기만 했다.

마침내 전시실에서 절규를 마주한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고 속도 조금 울렁거렸다. 뭉크의 걸작을 나도 보았다는 뿌듯함보다는 그림이 내뿜고 있는 기운이 그림과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에게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프랑스의 대문호 스탕달이 피렌체를 여행하던 중에 어느 교회의 미술 작품 앞에서 어지러움과 호흡 곤란을 느꼈다는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 이런 것이었을까. 절규를 마주한 관람객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림만을 응시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림의 주인공과 같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실 전시실에 걸려있는 절규는 실제 사람과 똑같아서 소름 돋는 그림이 아니었고, 화가가 수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완성한 그림은 더욱 아닌 것 같은데도 절규만의 특별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림을 볼 때 궁금증을 던지면서 감상하면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때도 있고, 놓치고 있던 사실을 발견할 때도 있다. 그림 가운데에 서 있는 저 남자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일까 아니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을 보고 반응 하는 것일까. 그림의 제목처럼 주인공이 절규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분명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 그림의 제목이 ‘절규’보다는 ‘비명’이 더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왼쪽 뒷 배경에서 멀찌감치 걸어가는 두 사람은 남자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한 것인지, 듣고 무시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뒤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을 가고 있다. 남자의 비명은 소리 없는 동작에 불과한 것일까.

뭉크는 떠오르는 생각을 틈틈이 메모해 두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것은 곧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니까 뭉크는 문장을 그림으로 표현 했던 셈이다. 뭉크가 남긴 메모들은 그의 작품과 예술관, 나아가 한 인간으로써의 뭉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뭉크 영감의 원천

친구 두 명과 함께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해는 지고 있었다. 하늘이 갑자기 핏빛의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나는 우울감에 숨을 내쉬었다. 가슴을 조이는 통증을 느꼈다. 나는 멈춰 섰고, 죽을 것 같이 피곤해서 나무 울타리에 기대고 말았다. 검푸른 피오르와 도시 위로 핏빛 화염이 놓여 있다. 내 친구들은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흥분에 떨면서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을 관통해서 들려오는 거대하고 끝없는 비명을 느꼈다.



1892년 뭉크가 남겨둔 메모를 참고 해서 절규를 해석해 본다면, 비명을 지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이다.

일찍이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여의고 누나까지 같은 병으로 이별을 해야 했던 어린 뭉크에게 죽음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던 두려움의 근원이었다. 우울감에 시달리던 뭉크에게 노르웨이의 자연은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 가게 만드는 영감의 원천이면서도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도록 만드는 더 두려운 상대였는지도 모른다. 절규에서 그의 불안정한 상태와 흥분된 감정은 형형색색의 곡선으로 표현되었다.

1940년 독일이 노르웨이를 침공하여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뭉크는 자신의 작품이 독일군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했다. 뭉크는 유언장에 그가 소유하고 있던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오슬로시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것을 바탕으로 1963년 뭉크 미술관은 뭉크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에 개관했다. 미술관의 소장품은 뭉크관련 규모는 물론이거니와 화가 한명의 이름을 내 건 미술관 중에서도 세계 최대 규모다.

절규는 4개의 버전과 판화본이 있는데 뭉크미술관은 판지에 크레용으로 그린 작품과 판지에 템페라와 유채로 그린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유명한 작품들은 이것을 훔쳐다가 팔아넘기는 도둑들에게 자주 표적이 되 곤 하는데 절규 역시 2004년에 도난당한 적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작품이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 왔을 때는 복구 작업이 시급 할 정도로 많은 손상을 입은 후였다. 이후 뭉크 미술관은 보안 검색대를 강화하고 더욱 나은 보안 체계를 갖춘 새 미술관을 올해 여름을 목표로 개관 준비 중이다.



주소: Tøyengata 53 0578 Oslo

운영시간: 10:00 ~ 16:00

입장료: 성인: 120 NOK(한화 약 1만5000원), 18세 미만:무료

홈페이지: https://www.munchmuseet.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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