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그런 가족은 필요 없다
[여성칼럼]그런 가족은 필요 없다
  • 경남일보
  • 승인 2021.05.2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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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희 (진보당 진주시 부위원장)
 


5월은 소위 ‘가정의 달’이라고 말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연이어 있어 가족의 소중함과 의미를 되새겨보자고 하는 취지일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느라 가정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져 다소 갈등도 생기지만 가족의 돌봄과 연대의 소중함을 더 인식하기도 한다.

동시에 가정이 절대 안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다. 거대한 재난 상황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취약성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가정폭력은 가족 구성원 중의 한 사람이 다른 가족에게 계획적이고 반복적, 의도적으로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거나 정신적 학대를 통하여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손상과 고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가족 안에 거대한 권력자가 존재하고, 그 힘을 폭력으로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언제 폭력이 터질지 알 수 없는 긴장의 연속에서 살아간다. 2020년 한국여성의전화는 코로나19상황에서 한국의 가정폭력 실태를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안전하지 않는 가정 안에 갇힌 피해자들이 쉼터를 이용하지도 못하고 신고도, 상담도 하지 못하고 있는 극한의 현실을 토로했다.

작년 진주시에서 남편이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고 도주한 후, 딸을 찾아 상해를 입혀 중태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 중앙지에 실린 이 사건기사 제목은 ‘부부싸움 50대 남편, 아내·아들 살해, 딸은 중태’였다. 한 개의 언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기사제목이 “부부싸움 중”이라고 명시하였다. 가정폭력이 평등한 부부관계에서 발생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피해자는 배우자와 평등하지 않다. 살해까지 이르렀다면 지속적으로 오랜 기간 폭력이 발생한 최악의 비극적 결말이다.

우리는 쉽게 피해자에게 “왜?”라고 질문한다. “왜 신고하지 못했나? 왜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헤어지면 되지”하고 말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정폭력을 너무나 사소하게 여기고 있다. 강조하건대, 가정폭력은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 약자인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저항할 수 없다. 학대를 당하면서 자존감은 낮아지고, 무기력해지며, 가해자에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갇힌다. 여러 가지 가정폭력의 후유증들이 피해자를 벗어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가정폭력은 사적공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은폐되기 쉽고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 남의 가정일이라 끼어들면 안 된다는 생각들로 침묵하거나 도울 길을 생각하지 못한다. 지난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면서 비로소 사회적 범죄로 인식하여 공적으로 구제할 길이 생겼지만 여전히 사람들 관심 밖의 일이다. 이러한 무관심은 본의 아니게 가정폭력이 지속되게 하는 거대한 침묵과 방임에 동참하는 꼴이 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5월을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로 지정하여 전국에서 캠페인을 진행한다. 바로 지금, 가정 안에 갇혀 폭력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 이웃이 없는지 살펴보자. 가정폭력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며, 근절해가야 하는 사회적 범죄이다. 가장 편안해야 할 가정 안에서 한 인간을 파괴하고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그런 가족은 필요 없다. 피해자에 대한 통념에서 벗어나 힘을 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가정폭력피해를 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온 사회가 함께 침묵하지 말고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를 탓하고, 피해자를 따뜻하게 품어 회복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보자.  전옥희 (진보당 진주시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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