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피해자가 죽지 않는 사회로
[여성칼럼] 피해자가 죽지 않는 사회로
  • 경남일보
  • 승인 2021.06.23 1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옥희 (진보당 진주시 부위원장)
 
 


최근 젊은 여성들에 대한 조용한 학살이 진행되고 있다. 높아진 2030여성들의 자살률을 마주하며 하는 말이다. 가정에서부터 성평등하게 자라 왔고, 별다른 큰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사회에 나간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장벽이다. 임신과 출산을 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에서부터 막힌다. 면접에서 “성희롱을 당하면 어떻게 할꺼예요?”라는 질문을 받으며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검열 당한다. OECD 국가 중 성별임금격차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저임금, 불안정한 고용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직장동료가 탈의실이나 여자화장실에 불법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을 한 영상을 사고 파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도 출근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폭력의 후유증은 내 몫이 되어버린다. 힘들게 들어간 직장이기에 각종 차별과 성적 괴롭힘을 마주하며 참아내고 있다.

지난 5월, 또 한명의 여성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공군이라는 그녀의 직장은 피해자인 그녀에게 엄청난 배신감과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상사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조직적으로 묵살 당했다. 공군은 피해사실을 신고 받은 2주내 조사를 시작하고 가해자를 당장 분리해야 하는 매뉴얼을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의 입을 다물게 하는 2차 가해들이 난무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나 철저히 외면하고 피해자 구제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지금 한국 현실의 단면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성폭력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체계를 제도화해온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의 의식 저변에 있는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약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여전히 강건하다. 그러한 현실에 마주했을 그녀의 고립과 공포, 무력감, 배신감, 절망감이 느껴져 슬픔과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성폭력은 본질적으로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 힘이 있는 자가 자신의 권력으로 상대를 종속시키려는 성적인 폭력이다. 가해자는 권력자이기에 우리는 가해자의 언어와 입장을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피해자의 말보다는 가해자의 말이 더 잘 들린다. 여기에 함께 휘말리지 말자. 피해자는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이다. ‘상식적으로 직장동료에게 이러면 안되잖아?’하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피해자들이 말할 수 있다. 모든 성폭력가해자의 첫 번째 방어책은 은폐와 침묵이다. 손희정의 지적처럼 괴물은 침묵을 먹고 자란다. 피해자가 말하지 않으면 엄청난 괴물들이 활개치고 수많은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내가 무심코 내뱉는 피해자를 탓하는 말, 가해자를 옹호하는 말과 같은 2차 가해행위는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데 동참하게 하고, 자신을 가해자의 편에 서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가해자와 분리하고 피해자와 연대하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단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공감하고 분노하고, 애도해야 한다. 동시에 피해자지원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은 조직 내 문제를 철저히 규명하고 혁신해 나가야 한다.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침묵당하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이 말할 수 있는 힘과 용기, 피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더 이상 피해자들이 스스로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당신의 힘이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