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뒤벼리의 추억
[기고]뒤벼리의 추억
  • 경남일보
  • 승인 2021.11.0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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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옥 (경일사랑회)
 
 

 

‘벼리’는 벼랑의 순 우리말이다. ‘뒤’는 북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뒤벼리는 ‘북쪽에 있는 벼랑’이라는 뜻이다.

옛날 진주 뒤벼리 중턱에는 유치원이 있었다. 아침이면 나는 유치원에 가기위해 손수건에 코를 닦으며 골목에 서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펄럭이는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줄맞춰 남강 변을 걷는 것이 좋았다. 좁은 유치원에서는 책걸상도 없이 바닥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

당시에는 뒤벼리에 낙석도 없었고 풍화작용도 없어 주변에서 마음 놓고 쿵쾅거리며 뛰놀아도 괜찮았다. 그래도 뒤벼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대로 있어줄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치원은 문을 닫았고 뒤벼리에서는 가끔 돌이 떨어진다는 소리가 들렸다. 뒤틀린 단층의 표면이 부스스하게 일어나는 것을 쳐다보는 것도 슬펐다. 절벽 틈으로 암팡지게 돋아난 민들레가 혼자 절벽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애달팠다. 그때마다 내 유년 시절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잘 닦인 도로 위 버스를 타고 지날 때, 유려한 남강에 시선을 빼앗겨 뒤벼리는 나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사실은 쇠락하는 뒤벼리를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뒤벼리는 지리산에서 내려온 물이 수천 수만년 동안 비스듬하게 부딪치며 깎이고 닳아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남강 물은 뒤벼리가 시작되는 곳에서 비로소 방향을 틀어 휘돌아나간다. 강둑에 서서 내려다보는 강물에는 물비늘이 반짝인다.

요즘 뒤벼리에는 곳곳에 화려한 조명을 달고 있다. 마치 산수화 같은 풍경이다. 정적인데도 동적인 분위기를 낸다. 적당한 조도의 빛은 뒤벼리의 풍경을 은은하게 살아있게 만든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나 사랑에 빠지고 싶게 만들었다. 도로 아래에는 자전거 도로를 비롯해 트레킹 길도 조성됐다.

별안간 뒤벼리가 살아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방자치제 실시로 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도시환경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한쪽에는 뒤벼리를, 한쪽에는 남강을 두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보자

자연과의 대화가 많아진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입에 든 말이 고와진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이제 뒤벼리를 가슴에 다시 안아보자

허두옥 경일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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