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엄마됨에 대하여
[여성칼럼] 엄마됨에 대하여
  • 경남일보
  • 승인 2022.01.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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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희(진보당 진주시위원회 부위원장)
 



지난 1월 9일, 故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우리 사회는 급격히 바뀌었다. 아들의 죽음은 ‘한열이 엄마’에서 거리의 어머니로, 민주투사로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故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난 1월 15일 민중총궐기 집회현장에서 서명을 받고 계시던 故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님을 마주하며 엄마됨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라면 그녀들처럼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아주 쉽게 “엄마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여긴다. 열사의 엄마라고 해서 투사의 길을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내 자식이 경험한 부당함을 다른 이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정의로운 마음을 ‘엄마’라는 모성애로만 부각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여성들이 엄마되기를 미리 공부하고, 준비해서 되기보다는 여성으로 살아가다 보니 엄마가 되어진다. 시몬 드 보브와르의 유명한 말처럼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엄마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분위기에 맞서 대항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왜냐하면 언제나 ‘엄마’라면 모성애가 타고난 사람이어야 하고,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당연하고, 아니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는 존재로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오나 도너스는 ‘엄마됨을 후회함’에서 그러한 엄마들의 경험을 연구하여 ‘엄마됨’에 함의되어 있는 거대한 성차별의 문제를 제기했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는 모성애가 없는 여성을 윤리적으로 지탄해왔다. 그래서 엄마가 되어보니 모성애가 많지 않은 것 같은 여성은 혼란스럽다. 아이가 싫은 것은 아닌데, 한편으로 아이로 인해 내 삶이 없어지는 것이 너무 힘들다. 육아의 어려움이 때로는 모성애가 없는 여성으로 낙인찍힐까봐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모성애가 있는 척 연기하기도 한다. 남들이 사는 것처럼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다보니 엄마가 되었고, 가사, 돌봄, 육아로 인해 내 삶이 억압됨을 느끼지만 아이를 사랑하긴 하기 때문에 엄마됨을 후회한다는 말은 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후회는 원래 모든 인간관계에 따르는 감정으로 우리가 내린 수많은 결정에 후회가 따른다. 그런데도 출산과 육아는 성스러운 것이라 말하며 엄마가 되는 것은 결코 후회가 없는 영역으로 인식하게 한다.

성폭력이나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엄마는 뭐했냐? 엄마인데 몰랐냐?”, 아동학대가 발생하면 “계모라서 그렇다”, “친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 강력범죄자가 나타나면 “어려서 엄마가 버렸다더라” 무슨 일이든 원인은 엄마를 외친다. 함께 양육하는 아빠의 존재와 책임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의 성장과정에서 엄마의 역할은 크다. 엄마가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큰 역할을 하는 존재로 인식한다면 그만큼 존중하고 있는가? 가장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대하고 있지 않은가?

누구의 엄마라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없다. 아들을 먼저 보낸 배은심님의 삶은 이한열의 엄마이기에 당연한 행보가 아니다. 그녀는 자식으로 인해 계기가 되어 사회 운동가로 나아갔다. 이한열의 엄마였고,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부정의한 사회구조에 맞서 투쟁의 삶을 살아가셨다. 결국, 각자의 삶은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적 책임감을 가지고 불평등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이 있다. 그녀들에게 응원과 연대의 마음을 전하며 민주투사 배은심님께 경의를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전옥희(진보당 진주시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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