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7)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7)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2.1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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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라는 말은 1922년 2월, 잡지 개벽21호에 실린 이광수 선생의 ‘문학에 뜻을 두는 이에게’서 처음 들어왔다고 해요.

“다소 이지적(理智的) 요소들만이 너무 평론 비슷이 쓰기를 좋아하는 이는 논문작가가 될 것이외다. (논문이라면 말이 적당치 아니합니다마는 나는 영어로 Essay라는 것을 지칭합니다.) 칼라일, 에머슨 같은 이는 영문학에 유명한 논문학자 Essayist외다.”

이어서 “에세이”를 설명했는데, 경經 부賦 서序 같은 듕귁에 있었던 문체를 예로 들면서 그도 딱 어울리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한문에도 이소경(離騷經)이니 적벽부(赤壁賦)니 등왕각서 같은 것은 다 여기 속할 것이니, 이것을 소품문(小品文)이라 하면 긴 글도 있으니 적당치 아니하고 부(賦)라 하면 다소의 운율이 필요하니 그도 적당치 아니하고 논문이라 하면 신문잡지의 논문도 논문, 모든 과학적 논문도 논문인즉 논문이라 함도 적당치 아니하외다. 가령 에머슨의 에세이를 예로 들면 역사론(歷史論), 연애론(戀愛論), 교우론(交友論)이 모양으로 동양말로 번역할 때에 논자論字 달린 것이 많으니 그 의미로 논문이라 할 것이외다. 아마 문학적 논문이라면 좀 더 적당할지 모르겠습니다.”

한 마디로 ‘이것이 에세이다’하기가 어려워서 문학적 논문이라 한 것 같지요? 윤재근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에세이가 또렷해집니다.

‘서구에서 에세이라고 할 때 ‘문학의 수필(a proselyric)’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논문(treatise)도 에세이이며 학위논문(dissertation)마저도 때때로 에세이라 불러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연구논문(thesis)과 신문이나 잡지의 잡문(article)도 에세이라고 한다.’(말하는 에세이. 1992)

이광수 선생의 ‘문학적 논문’에서 ‘문학’의 의미를 ‘말꽃’에 둔다면, 문학과 논문은 대척점에 있을 것입니다. 의미구현이 직설과 논리를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논문에 비해 말꽃인 문학은 사유와 얼마나마 은유를 구사함으로써 피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논문이 이성에 호소하는 거라면 말꽃은 감성을 돋우는 수사가 있고, 논문이 설득에 목적이 있다면 말꽃은 느낌에서 깨달음을 얻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할 것이므로, ‘문학의 논문’은 쓰기가 엄청 어렵지 싶습니다. 암튼, 이광수 선생은 우리나라에도 “에세이”라는 형식의 글이 크게 성행하리라 예견했는데, 이 말은 적중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산문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논문은 아직 조선에는 많이 소개되지 아니한 문학적 형식이외다. 그러나 이는 문학적 형식 중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占한 것이며 특히 한문학漢文學 중에 순정문학적(純情文學的)작품이라 하여 온 것은 흔히 시부(詩賦)의 형식이기 때문에 금후의 조선문학에는 이 형식의 문학이 많이 성(盛)하리라 합니다.” 훌륭한 글지이는 보는 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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