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10)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10)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3.1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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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여, 이 책은 제법 정성을 기울여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 실린 글은 단지 나의 집안일이나 사삿일을 이야기하려는 것일 뿐, 그 밖의 다른 의도는 없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따라서 이 작업은 독자를 위해서거나 내 개인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일은 내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일들이다.-

이 책이 세상 사람들의 호의를 염두에 두고 씌어진 것이라면, 나는 좀 더 나 자신을 꾸미고 조심스럽게 검토한 다음 세상에 내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독자들은 여기서 생긴 그대로의 나 자신을, 자연스럽고 평범하고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채로의 나 자신을 보아주기 바란다. 내가 묘사한 것은 곧 나 자신이다. 따라서 나의 온갖 결점들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나는 되도록 숨김없이 타고난 나 자신을 그대로 내놓고 싶다.- 독자들이여, 나 자신이 곧 이 책의 소재인 것이다. (드 몽테뉴. 수상록. 권용호 옮김. 홍신문화사.1997)’

몽테뉴의 이 짧은 언술이 ‘에세이·수필’의 성격을 결정짓는 잣대로 쓰이면서, 몽테뉴의 이런 소회를 들어 ‘자기 경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쓰는 글이다’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말꽃과 인연 닿는 글엔 겉뜻 안에 따로 뜯어봐야 하는 속뜻이 흔히 있거든요. <만일 내가 태초의 대자연의 법칙 아래서 살뜰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태어날 수 있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묘사할 수 있었으리라.> 이런 말도 있어서 나는 ‘이 책은 제법 정성을 들여 기록한 것이다’와 함께 이 말을 저울에 얹어보곤 합니다. 몽테뉴의 ‘독자들에게’에 있는 ‘내’가 그냥 ‘내’가 아니라 만약 어떤 비유로 써진 그 무엇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정의해야 하는가?

몽테뉴가 쓴 글이 다 그렇듯이 ‘철학은 죽는 일을 배우는 일이다’의 들머립니다.

‘키케로는 말하기를 철학이란 죽음에 대비하는 일에 불과하다고 했다. 더욱이 그것은 연구와 명상이 우리의 심령을 바깥으로 끌어내어, 신체 이외의 일에 분망하게 하는 것이며, 또 죽음을 공부하고 죽음에 닮아가는 일이며, 세상의 모든 예지와 사유가 결국은 죽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이 한 점에 귀착된다는 것을 말한다. 진실로 이성이 하찮은 것이 아니라면 이성은 오로지 우리들의 만족만을 목표로 하며, 그리고 성서에 씌어있는 바와 같이, 그것의 모든 노력은 결국 우리들에게 편안히 살게 하는 길을 찾아주는 일이라야 한다.’

‘내가 겪은 걸 그대로 쓴다’는 이런 정의와는 제법 멀어보입니다. 안다는 이들이 글을 쓰고 읽을 때나 뭘 매길 때 ‘대충 건성 들여’ 하는, 우린 그런 버릇이 있는 것 같아요. 프랜시스 베이컨은 확증편향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지성은 어떤 입장을 택하고 나면 그것을 지지하고 확신하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끌어들인다.” 깊이 새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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