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16)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16)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4.2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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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예의 유입이 일본을 거쳐 왔듯이 에세이·수필도 저들 뒤를 따라간 꼴입니다.

일본에서 1916년 오사카매일신보에 다화(茶話)가, 1923년 창간된 문예춘추(文藝春秋)에 ‘隨筆’이, 1930년 도쿄와 교토 대학이 ‘엘리아 에세이’를 교재로 채택하고.

우리는 1919년 2월에 창간된 ‘창조 2호’에 기행문, 감상문 하는 글이, 1922년에 이광수 선생이 ‘에세이’를 소개하고, 1924년 잡지 <영대>에 이름 ‘隨筆’을 쓰고, 1938년 10월 수필 전문지 <박문>이 월간으로 발행되고, 1939년 2월에 시인 정지용 선생이 발간한 <문장>이 그동안 쓰였던 감상·상화·기행·소품·만필·단상·수감·산문·잡문, 이런 명칭들을 하나로 묶어 <수필隨筆>이라 하고.

1908년 ‘소년’. 1914년 ‘청춘’. 1918년 ‘태서문예신보’에도 ‘수필’은 닮은 글도 실리지 않았던 것이, 1930년대에 이르러 수필만 싣는 월간잡지가 나올 정도로 수필(隨筆)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면서, 시나 소설에서도 에세이·수필 따라 하기 바람이 불어 ‘수필시’니 ‘수필소설’이니 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시나 소설의 수필화라는 건데요, 김현주 선생은 <1930년대 수필개념의 구축과정>에서 당시 수필 바람의 현상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1939년 2월 최재서는 ‘문학의 수필화’에서 저널리즘과 문학의 공모에 주목했다. 문학이 저널리즘의 상업적 요구에 굴복하고 문인들이 수필로 흘러드는 추세가 궁극적으로 문학 자체의 수필화로 귀착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에 따르면 문학의 수필화는 문학이 이지 고잉easy-going한 만필이 되어가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1930년대 이 땅에 불었던 수필(隨筆) 바람은 말꽃이 아니라 저널리즘을 타고 분 바람이라는 거지요. 사실 ‘바람’은 무섭습니다. 쏠리기 시작하면 이성을 잃어버리지요. 임화 선생도 저널리즘의 영향이지 문학의 발전이 아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수필화(隨筆化)’가 시인이나 소설가의 내적 갈증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냥 바람이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문장에 분 바람이지요. 1930년대에 수필 쓰는 사람은 많았지만 말꽃에 에세이를 접속한 ‘에세이스트·수필가’가 없었다는 겁니다. 아무나 아무렇게나 쓴 거지요. 제노라 하는 사람들이 다투어. 그래서 감상·상화·기행·소품·만필·단상·수감·산문·잡문, 이런 신변잡기들이 휘파람 불며 신이 나버린 겁니다. 수필(隨筆)이란 이름으로. 그러니까 이 땅에 들어오자마자, 말에 꽃을 피워야 하는 에세이· 隨筆은 수필이 아닌 만필로 즐겁게 떨어집니다.

여러 가지 정보와 의견을 여러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는 저널리즘은, 요즘 말로는 팔로워라 하나요? 추종하는 팬이 많아야 하죠. 그래야 주목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대중이 원하는 취미와 관심에 영합하기 위해 비위를 맞추려고 아부(?)를 하고, 인기에 연연하다 보면,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을 떠난 통속주의로 흐르게 됩니다.

인기영합주의는 원래 통속하거늘, ‘교양인의 여기’로 뽐을 낸 거지요. 만필이 ‘에세이·수필’이란 허울을 쓰고. 역사는 그 바람을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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