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동학농민군 유골 발굴 적극 나서기 바란다
[사설]동학농민군 유골 발굴 적극 나서기 바란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7.0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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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128주년을 맞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산청의 야산 중턱에 동학농민군 유골 180여구가 묻혔다는 증언이 나와 학살 추정지 발굴조사 필요성이 제기됐다. 산청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지난 5일 기자회견을 통해 1894년 동학농민군 180여명이 억울하게 학살된 곳의 유해 발굴을 요청 했다. 마을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지난 1894년 시천면 중태리에서 일본군과 관군에 쫓긴 동학농민군이 하동 옥종에서 지리산 쪽으로 모여 들었다가 모두 억울하게 학살됐다는 것이다. 당시 중태리 산3번지 주변에 흩어진 시신들은 매장도 하지 않고 버려져 있었고 한참 후 주민들이 일본군과 관군의 눈을 피해 시신을 한곳에 가매장해 줬다고 전해지고 있다는 구체적 증언이 나온 것이다.

당시 주한 일본공사관 자료에는 1894년 비슷한 시기에 일본군이 지리산 인근에서 동학농민군 186명을 사살하고 2명을 생포했다는 내용의 ‘전과’ 기록도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돼 주민 증언의 신빙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장을 방문한 사학자도 증언에 신빙성이 있는 만큼 확인해 볼 필요가 충분히 있다는 입장이다. 기존 사료의 흐름을 본다면 증언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유골 발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시천면 내대리 일대는 역사적으로 1894년 음력 4월 백낙도 대접주를 중심으로 500여명의 동학농민이 봉기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곳이다. 산청군도 2019년 9월 ‘산청군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산청이 영남지역 최초의 동학농민혁명 발상지임을 알리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은 봉건제도를 개혁해 ‘사람답게 사는 평등한 세상’을 열고자 한 백성들의 뜨거운 외침이고 함성이었다. 정부는 지난 2019년 5월 11일을 동학농민혁명 국가 기념일로 지정 한 바 있다. 이 후 각 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산청군은 시천면 중태리 일원의 동학농민군 학살 추정지에 대한 지역 주민의 구체적 증언이 나온 만큼 유골 발굴에 적극 나서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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