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고문헌 [2]‘석지 채용신’ 초상화 특별전
경남의 고문헌 [2]‘석지 채용신’ 초상화 특별전
  • 경남일보
  • 승인 2022.11.0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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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화가의 영혼이 깃든 위대한 그림들

지역서 접하기 어려운 어진화가 그림
초상화의 특징과 가치를 제대로 알려


경상국립대학교는 고문헌도서관과 지역민이 소장한 조선 말기 최고의 어진화가 석지 채용신이 그린 초상화 아홉 점을 한자리에 모아 올해 말까지 고문헌도서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다. 전시품은 지역에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어진화가의 그림들이다. 동국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조정육 박사의 강연 원고를 바탕으로 경남지역 소재 석지 채용신 초상화를 소개한다.
 

채용신이 그린 초상: 위(정제용, 이조년, 이상규, 김유신), 아래(주자, 제갈무후, 공자, 최치원)

◇계재 정제용·매운당 이조년 초상

초상은 산청 남사예담촌 사양정사 옆 선명당에서 봉안해 오던 것으로, 1909년에 그린 작품이다. 후손 정양교씨가 기증했다. 정제용은 포은 정몽주의 후손이다. 저술로 ‘계재집’이 있다.

그림은 머리에 관을 쓰고, 학창의를 입고, 가부좌를 하고 있다. 오른손은 가볍게 주먹을 쥐고, 왼손에는 깃털 부채를 들었다. 왼쪽 버선발이 오른쪽 다리 위에 올려져 있다. 얼굴색은 황갈색이 주조를 이루었다. 무수한 붓질을 반복하여 피부 결을 표현했으며, 양쪽 볼과 턱 아래 등의 반점까지 극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매운당 이조년 초상은 경북 성주 안산영당에 봉안된 1825년 본을 옮겨 그린 그림으로, 제작 연대는 미상이다. 성주이씨 경무공파 문중에서 기탁했다. 이조년은 고려 시대의 문신으로,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로 시작하는 시조의 작자로 널리 알려졌다.

그림은 원나라 관리들이 쓰던 관모인 발립을 쓰고, 홍포를 걸치고, 호피가 깔린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이전의 모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런데 1825년 본에는 볼 수 없었던 옷고름과 허리띠를 그려 넣었다. 족좌대는 사라졌으며 대신 돗자리가 등장한다. 손에는 본래 염주가 들려 있었으나, 이 그림은 염주가 삭제됐다. 염주를 쥐었던 왼손이 어색하게 들려 있다.

◇제갈량·공자·주자 초상

제갈량의 초상은 전남 곡성 무후사에 봉안되었던 영정으로 제작 연대는 미상이다.

고성 칠원제씨 종중에서 영구기탁했다. 제갈량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명재상으로, 유비와 함께 통일의 위업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머리에 와룡관이라고 하는 제갈건을 쓰고, 학창의를 입었다. 오른손에는 깃털 부채를, 왼손에는 ‘주역’을 들고 있다. 제갈량 초상은 왜란이나 호란으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 제작했는데, 일제 침략으로 조선의 국운이 위태로운 시기 채용신에 의해 이 그림이 제작된 것은 이 작품의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공자 초상은 1914년 제작에 제작된 것으로, 도통사에서 영구기탁했다. 도통사는 원래 진양호 상류 물안개 휴게소 인근에 있었는데, 남강댐 확장공사로 인해 수몰되자 1995년 진주시 내동면으로 이전했다. 도통사는 일제강점기에 공교지회를 설립하여 유교 부흥 운동을 주도했던 곳이다. 여기에는 공자·주자·안자(안향)의 초상을 봉안하고 있었으나, 안자상은 그 후 도난당했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는 ‘지성선사공자’라고 적혀 있어 주인공이 공자임을 알 수 있다. 머리에 사구관을 썼는데, 이 관은 공자가 52세에 노나라의 대사구 벼슬을 하였음을 의미한다. 공자상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학창의를 입었다. 공수 자세를 취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돗자리의 문양은 평면적이고 앞쪽이 크고 뒤쪽이 작으면서 방향은 모두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1920년대 이전 채용신의 초상화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1920년대 이후에는 돗자리에 원근법이 적용되어 비스듬하게 표현된다.

주자 초상은 1914년에 제작된 것으로, 도통사에서 영구기탁했다. 주자는 송의 유학을 집대성하여 주자학을 완성한 인물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측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머리에는 복건을 쓰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 관자놀이에 북두칠성 모양의 반점이 있는 것이 주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공자는 흰색 유복을 입고 있지만, 주자는 옥색 혹은 녹색 유복을 입었다. 주자상의 오른쪽 상단에는 ‘문공주자’라고 적혀 있어 주자상임을 알 수 있다.

◇혜산 이상규·송산 권재규 초상

1916년에 제작된 그림으로,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이상규의 본관은 함안으로, 성재 허전의 제자다. 1880년 온 가족을 이끌고 고성 무양리에서 산청 묵곡으로 이주하여 학문 연구와 문중 부흥을 위해 전념하였다. 저술로 ‘혜산집’ 등이 있다.

이상규가 칠순이 되던 1916년에 조카들의 권유로 자신의 초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림 상단에는 ‘혜산 이옹 망팔년(일흔한 살) 병진년(1916)에 그린 진영’이라는 제목이 가로로 적혀 있고, 제목 아래에는 초상화를 제작하게 된 경위가 세로로 적혀 있다. 얼굴에 보이는 무수한 붓 자국들이 육리문에 따라 표현되어 명암법으로 양감을 보여주고 있는 수작이다. 비록 하나뿐인 눈이지만 그 형형한 눈빛에서 선비의 지조를 지키고자 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화문석은 정면에서 바라보듯 평면적인데 다만 앞의 문양은 크게, 뒷문양은 작게 그림으로써 원근감을 표현했다. 이것 역시 1920년 이전 채용신 작품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오른손에는 깃털 부채를, 왼손에는 ‘주자대전’을 들고 있다. 이것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숭정학(崇正學)’을 유언으로 남길 정도로 주자학을 중요시했던 이상규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송산 권재규 초상은 1931년에 제작된 것으로, 본래 산청 단성 인곡서원에 소장되어 있던 것이다. 권재규의 본관은 안동으로, 노백헌 권재규의 문인이다. 문집으로 ‘이당집’이 있다.

채용신 초상화 전시 관련 신문 기사를 보고 송산 손부 하종분 여사가 권재규 초상을 추가 전시 요청하여 기증이 이루어졌다. 합천 삼가에 사는 류원중의 아들이 부친의 초상을 그리게 되었는데, 권재규의 아들이 이 소식을 듣고 채용신을 초빙하여 그린 것이다. 인곡서당 권재형씨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그림값으로 벼 20섬을 주었다고 한다. 문중에는 얼굴상 초안 하나와 전신상 초상 하나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전신상은 복제본이었다. 그러나 얼굴상과 전신상을 통해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을 연구할 수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고운 최치원·김유신 초상

1920년에 제작된 것으로, 남악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최치원의 본관은 경주,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림은 오사모에 단령을 하고 담홍색 시복(時服)을 입었으며, 두 손은 앞으로 모아 홀을 들고 있다. 바닥에는 화문석이 깔렸는데 앞 문양은 크고 뒷문양은 작다. 오사모의 형태는 양각이 좁고 각이 졌으며 아래로 처져 있다. 이런 오사모 형식은 고려말 조선초기의 특징으로 채용신이 살았던 시대와는 차이가 있다. 이것 역시 최치원이 조선 시대 사람이 아니라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였음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흰색 단령의 깃이 넉넉하게 패이고, 깃이 넓은 것은 여말선초의 관복과는 달리 조선 후기부터 나타나는 특징이다. 유학자의 모습으로 묘사됐다.

김유신 초상은 1920년에 제작된 것으로, 남악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여 흥무대왕으로 추봉됐다. 김유신은 황제가 쓰는 면류관을 쓰고 면복을 입었으며, 두 손은 가슴 앞에서 맞잡고 홀을 들고 있다. 면류관 복장으로만 보면 그는 황제에 버금간다. 그가 흥무대왕으로 추봉되었음을 상기시킨다. 면류관의 상판인 연에는 해와 달이 그려져 있다. 그의 좌측에는 칼이, 우측에는 활과 화살이 그려졌다. 그가 삼국통일을 달성한 신라의 명장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당당한 풍채에서는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꼭 다문 입술에서는 금세라도 쩌렁쩌렁한 소리가 나올 것 같다. 눈에는 빛을 받을 때 반짝이는 백광이 보인다. 그림은 장수이자 왕이었던 김유신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즉 활과 화살 그리고 칼은 장수의 이미지를, 면류관과 장복은 왕과 정치인의 의미를 상징한다.

이정희 경상국립대 고문헌도서관 학예연구사

 
송산 권재규 선생과 문하생
계재 정제용의 계재집과 목판
송산 권재규 전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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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2-11-08 18:23:37
불교국가 일본. 을사조약.한일병합후의 시대상에서 제작된 초상화들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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