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자 간 대화 몰래 녹음은 엄연히 불법인데 왜 무죄?
3자 간 대화 몰래 녹음은 엄연히 불법인데 왜 무죄?
  • 김성찬
  • 승인 2023.02.22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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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증거 잡으려 동의없이 대화 녹음한 업체대표 ‘무죄’
창원지법 “법이 금지한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하지 않아”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1항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아울러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청취한 사람이나 그에 따라 알게 된 대화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하면 당연히 처벌도 받는다.

그렇다면 부하 직원의 성추행을 따지러 간 자리에서 증거확보를 위해 다른 두 사람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했다면 죄가 있을까 없을까. 1심 재판부는 죄가 안된다고 봤다.

창원지방법원 형사2부(김은정 부장판사)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경호업체 대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용역계약을 맺은 B씨가 자신의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이유로 지난 2021년 10월 C씨와 함께 B씨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따지는 자리에서 B씨와 C씨의 대화내용을 녹음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언급했듯 대화에 원래부터 참여하지 않은 제3자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타인들 간 발언을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다.

실제로 아내의 외도를 의심해 몰래 대화를 녹음한 뒤 이를 이혼소송에 제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편에게 1심 법원이 최근 유죄를 선고했다.

이 남편은 아내의 불륜을 의심, 자신의 집에 외장 하드디스크 형태의 녹음기를 설치해 3차례에 걸쳐 아내의 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하고 청취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재판부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하고 이를 이혼소송에서 증거로 제출해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시했다.

반면, 누구에게나 들릴 정도의 가청(可聽) 거리에서 이뤄진 대화는 제3자가 몰래 녹음하더라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도 있었다.

서울의 한 학원에서 근무하던 D씨는 학원 데스크에 앉아 약 1m 거리의 원장실로부터 흘러나오는 대화를 몰래 녹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재판부는 이를 ‘공개되지 않은 대화’라고 보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들리는 경우, 즉 대화자들로부터 가청 거리에 있는 사람이 청취하거나 녹음한 대화는 위 대화자들이 가청 거리에 타인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창원지법의 이번 판단은 후자의 판결사례와 닮았다. 즉, B씨와 C씨가 나누는 대화를 A씨가 동의절차 없이 몰래 녹음하기는 했지만, 법에서 금지한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가로 3m, 세로 2.7m 크기의 경비초소 규모에 비춰 B씨는 A씨가 대화를 모두 듣고 있는 것을 전제로 대화를 나눴다”며 “당시 경비초소에 A, B, C씨 등 3명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A씨가 비록 직접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 대화를 몰래 녹음했다 하더라도 이 사건 대화는 A, B, C씨 등 3인 간의 대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지역의 한 법조계 관계자 역시 “대화의 공개성 여부는 단순히 대화 참여 유무가 아니라 발언자의 의사와 기대, 대화의 내용과 목적, 대화상대의 수, 장소의 성격과 규모, 출입의 통제 정도 등 당시의 객관적인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성찬기자 kim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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