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평공단 속 문화가 싹텄나 '나무88갤러리' 눈길
상평공단 속 문화가 싹텄나 '나무88갤러리' 눈길
  • 백지영
  • 승인 2023.07.1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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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직물창고 개조 갤러리로 둔갑…비전업·신진 작가에 문 활짝
직물 공장과 금속 가공 업체 등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공장이 밀집한 진주 상평공단. 제조업 밀집지인 이곳에 최근 갤러리 하나가 문을 열었다.

이름은 ‘나무88 갤러리’, 동서남북이 공장으로 둘러싸인 주요 간선 도로에서 2차선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전시 공간이다.

이곳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이달 초 한 비전업 사진작가가 조심스럽게 회사로 걸어온 전화를 통해서였다.

자신이 진주 상평공단에 새로 생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는데, 대관비를 받지 않고 공간을 흔쾌히 내어준 갤러리가 고맙다며 이곳을 소개해 줄 수 있겠냐는 질문이었다.

상평공단의 갤러리. 설명을 듣자마자 떠오른 공간이 있었다. 지난해 진주지역 비전업 사진작가들의 사진 축제 ‘사진진주 2022’를 살펴보기 위해 방문했던 한 목재 창고. 평소 합판 등을 쌓아뒀던 창고 등을 비워 외벽과 내부 공간에서 사진을 걸어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지난 10일 다시 찾은 이곳은 지난해와는 달리 ‘나무88 갤러리’라는 간판과 함께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목재가공업체 ㈜원스톱우드의 건물 여러 동 중 하나의 창고 일부를 개조해 갤러리로 정식 사업자 등록을 한 채였다.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과 시간이 수놓은 얼룩을 머금은 투박한 벽 사이 자리 잡은 신식 나무 문을 넘어 한 걸음 들어서자, 바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깔끔하게 단장한 20평 남짓한 공간의 하얀 벽과 진분홍 파티션(전시용 칸막이) 위로 펼쳐진 흑백 사진들이 고요한 사진의 세계로 초대했다.

‘진주 인적 드문 곳의 한적한 갤러리. 예술가의 초창기 가장 날 것일 때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 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을 위해 휴대전화 지도 앱에서 이곳을 검색했을 때 마주한 설명과 꼭 맞는 모습이었다.

지난 5월 문을 연 이곳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전시는 모두 3건. 개관전인 이철호 작가의 ‘결박’과 지난달 진행한 강정훈 작가 초대전 ‘주름’, 이달 1~28일 선보이는 권영창 작가의 ‘그녀, 그레이를 입다’까지 모두 비전업 사진작가의 개인전이다.

이 공간이 갤러리로 변신한 것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과 목재 가공업을 하는 김은옥(53) 관장이 이 일대를 매입해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현재 갤러리로 사용 중인 공간을 당시 테이블 등을 만들 때 톱질과 사포질, 도색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공방으로 조성해 두고, 가끔 내부 집기를 비워 조촐한 전시회를 열곤 했다.

김 관장은 “20년 전부터 사진에 매료돼 진주지역 비전업 사진작가 모임인 ‘타래’에서 활동 중”이라며 “타래 식구들과 인화한 사진들을 어떻게 진열하고 전시를 구성해야 보는 사람 입장에서 좋을지 등을 연구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다”고 했다.

자신들처럼 취미 삼아 사진이나 그림, 서예 등 다른 작품 활동을 하는 이들도 이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해보자는 생각이 든 것은 1년 전쯤. 전시 전용 공간으로 꾸미자 또 다른 생각이 따라붙었다. 보통 전시를 하면 언제 어디서 전시했다는 약력이 남는데, 변변찮은 이름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제 아호 ‘청담’을 붙여보라고 하던데 저를 내세우긴 싫었어요. 고민하다가 매일 마주하는 ‘나무’와 갤러리 주소(진주시 도동로88번길 22)에서 숫자 ‘88’을 따왔죠. 정하고 보니 ‘88’이 한 남녀가 손을 잡고 갤러리를 구경하는 뒷모습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런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꿈꿉니다.”

시작은 사진이었지만 김 관장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 갤러리의 문을 열어둘 생각이다. 다만 대관 비용은 유동적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처음에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대관을 할 계획이었지만, 문득 그럴 경우 타 갤러리에 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관장은 “배고픈 비전업 작가나 첫 전시에 나서는 신진 작가의 전시, 그리고 초대전 등에는 계획대로 무료 대관할 생각”이라며 “대신 기관 전시나 전시 경력이 많은 이들의 개인전에는 대관료를 받아서, 그 비용을 무료 대관 시 사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갤러리를 차린 지 3개월, 갤러리 운영 공부를 한 적도 없고 본업도 있어 ‘관장’이라고 불릴 때마다 부담 백배라는 ‘초보 관장’이지만 자신이 꾸려나가고픈 갤러리에 대한 목표 의식은 또렷했다.

“많은 사람이 서울 유명 갤러리로 인기 작가 작품을 보러 가는데, 사실 그건 웅장한 실물을 보냐 안 보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보다는 삼청동이나 인사동의 조그만 갤러리에서 생각지도 못한 작품들을 만나는 게 더 좋거든요. 대단한 작가들이야 어디서든 전시를 할 수 있을 테니, 이곳은 그렇지 않은 작가들을 위한 공간이 되길 바라요. 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매력도 크거든요. 다른 관람객분들도 그 매력을 마주하고 행복을 느끼고 가시길 하는 마음이에요.”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진주시 상평동 나무88갤러리에서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권영창 개인전 ‘그녀, 그레이를 입다’ 전시 모습. 백지영기자
진주시 상평동 나무88갤러리에서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권영창 개인전 ‘그녀, 그레이를 입다’ 전시 모습. 백지영기자
지난 10일 진주시 상평동 나무88갤러리에서 김은옥 관장이 공간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0일 진주시 상평동 나무88갤러리에서 김은옥 관장이 공간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0일 진주시 상평동 나무88갤러리에서 김은옥 관장이 공간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0일 진주시 상평동 나무88갤러리에서 김은옥 관장이 공간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나무88갤러리 전경. 백지영기자
나무88갤러리 전경. 백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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