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정전협정 70주년과 ‘사실상의 평화’
[시민기자]정전협정 70주년과 ‘사실상의 평화’
  • 경남일보
  • 승인 2023.07.2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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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경제 위해 큰 그림 그려야”
‘널문리’는 분단의 상징처럼 된 판문점의 옛 지명이다. 이곳에서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이 체결된다. 처음부터 협상이 널문리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원래 휴전협상은 개성의 북쪽에 있는 99칸 한옥 요릿집 내봉장에서 시작했다. 이후 중립성 논란이 제기되자 널문리의 주막 앞 콩밭에 초가집과 임시천막을 지어 회담을 이어갔다.

널문리가 판문점으로 불리게 된 것은 당시 휴전회담 참여했던 중국 측이 ‘널문리 가게’를 한자 표기식으로 ‘板門店(판문점)’으로 고쳐 불렀고 북한, 중국, 미국의 연락장교들도 널문리를 한자표기식으로 표기했다. 그리고 목조건물이 지어지고 이곳에서 협상과 정전협정이 체결된다. 정전협정을 종전선언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휴전(休戰, Truce)과 정전(停戰, Armistice) 그리고 종전(終戰, End Of War)은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다.

휴전은 군사적 행동을 한정된 기간과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멈추지만 전쟁은 계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정전은 전투행위는 멈추지만 완전한 평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휴전과 정전은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종전은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는 것으로 분쟁 당사자 간의 최종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 70년 전 체결된 정전협정에는 늘 당사자 문제가 제기된다.

국문, 영문, 한문으로 각각 작성된 협정문에는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사령원 펑더화이), 국제연합군(총사령관 마크 클라크)이 참석해 서명했지만, 대한민국의 대표는 체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남북한 당사자가 종전이나 평화협정을 선언하더라도 대한민국은 정전협정의 주체가 아니므로 국제법적 실효성에 대한 반론의 여지를 남기게 됐다.

하지만 한국은 서명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 전쟁 당사국임이 명확함으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된다는 논리도 함께한다. 이렇게 논란의 여지를 남긴 정전협정은 한국전쟁 시작된 지 1129일 만에 종전도 평화협정도 아닌 전쟁을 잠시 멈춘 상태로 70년을 이어오고 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평화에 대한 논의에는 두 가지의 평화 체제가 존재한다. 하나는 ‘법적인 평화(de jure peace)’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상의 평화 (de facto peace)’다. 한반도 평화 체제에 대한 논의에서는 주로 평화협정과 같은 ‘법적인 평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법적인 평화’는 ‘사실상의 평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의 한계와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나 ‘오슬로 협정’과 같은 사례들을 볼 때 평화는 꼭 약속으로만 오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반도의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에 대해서도 선언적이고 포괄적인 ‘법적인 평화’의 의미와 함께 신뢰 구축으로 실질적인 평화 체제로 발전할 수 있는 ‘사실상의 평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평화는 갈등 당사자 사이의 신뢰와 협정의 이행이 중요하며, 쌍방의 신뢰 구축은 평화로 나아가는 속도를 결정한다.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는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즉, 두 개의 국가 개념보다 점진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평화공존의 의미가 크다. 또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라는 표현은 ‘결과로서의 통일’보다 ‘과정으로서의 통일’ 즉, ‘사실상의 평화’를 강조한다. 북방외교를 펼쳤던 노태우 대통령은 1991년 제43차 UN 총회 연설에서 “한반도에서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날, 세계에는 확실한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남북한은 정치·경제·군사적 신뢰 구축으로 평화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는 선순환 구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에 그어진 선을 넘고 길을 만들어 동북아 경제공동체로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평화경제다. 지금 남북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눈앞의 이익만을 우선하는 ‘흥정’이 아니라, 내일의 큰 이익을 위해 지금의 이익은 양보할 수 있는 ‘협상’이 필요한 때이다. 먼저 움직이고 넓게 생각하며 길게 보자.

최웅환 시민기자(통일학 박사)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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