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예술, 기록의 고민을 담다
경계를 넘는 예술, 기록의 고민을 담다
  • 백지영
  • 승인 2023.07.24 2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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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립미술관 기획전 ‘아카이브 리듬’(상)
실험·개념·리얼리즘…현대미술 기록 고찰 담아
이건용·안규철·방정아 3인전…10월 29일까지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적인 미술 장르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오브제(사물)·영상·설치·개념 등 다양한 유형이 혼재하는 동시대 미술을 미술관은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까.

지난 21일 막을 올린 경남도립미술관의 기획전 ‘아카이브 리듬’은 ‘현대 미술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전시다.

전시 제목에도 등장하는 ‘아카이브’는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 ‘기록물’과 이를 수집·연구·보존해 이용객들에게 제공하는 장소를 뜻하는 용어다. 미술관에서 주로 다루는 ‘미술 아카이브’는 미술 또는 미술 활동 관련 사건·사실은 물론, 미술인과 그 주변에 관한 기록물을 포함한다. 작가 노트를 비롯한, 사진, 영상, 메모, 편지, 브로슈어(소책자), 신문, 잡지, 도서 등이 대표적이지만, 기록자가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그 기본 구성의 방향과 구체적인 유형들이 결정되기도 한다.

제목부터 목적의식이 선명한 이번 기획전은 특정 주제 의식하에 바라보게 되는 대부분의 전시와 달리 아카이브 관점에서 전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이건용·안규철·방정아 등 한국 실험미술, 개념미술, 리얼리즘 미술을 대표하는 3명의 작가의 참여로 ‘미술 아카이브’에 대한 논의의 일부를 전시로 구현한다. 명성 높은 각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도립미술관이 이들 작가의 활동을 어떻게 기록하고자 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전시를 기획한 이미영 학예연구사는 “전시 참여 작가들은 이미 각자의 분야에서 한 획을 긋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그 세계에 아카이브 관점에서 접근해, 어떻게 구축됐는지 역으로 되짚어 보려 했다”고 말했다.

작가별 작품의 스타일과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방법, 철학, 시대성이 다 다른 만큼 각 작가를 어떤 관점에서 아카이브 할지 다른 지점을 찾아내는 데 집중했다.

전시는 1층 안규철 작가 공간에서 시작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개념미술의 흐름을 주도한 작가로, 1980년대 부조리한 사회와 미술의 관습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형 조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대를 지나며 일상의 사물에 새로운 맥락과 의미를 부여한 ‘오브제 조각’과 언어를 이용한 작업을 선보였으며, 2000년대 이후 건축적 규모의 설치 작업과 공공 미술로 작업의 영역을 넓힌 작가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은 막막했던 시절에 대한 자화상이다. 작가를 따라다니던 정치적 현실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예술과 예술가로서의 자신으로 눈길을 돌리게 됐다는 신호 같은 작품이다. 손잡이가 없는 문과 손잡이가 5개 달린 문 사이로 화분에서 자라난 목제 의자는 작가가 겪었던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예술로 통하는 길은 문고리가 5개씩 달려서 너무 어렵고, 삶으로 돌아가려는 길은 손잡이가 사라져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죽은 나무를 화분에 심고, 매일 정성껏 물을 줘 나무 의자가 자라나도록 하는 불가능한 일을 설치 작업으로 표현하려 해봤습니다.”(안규철 작가)

거대한 벽면을 매운 작품 ‘그들이 떠난 곳에서’에 담긴 이야기도 흥미롭다. 2012년 광주비엔날레 당시 바다의 파도를 캔버스 200개로 분할해 그린 뒤, 전시장에 걸어 사진을 찍고 다시 떼어낸 뒤 광주 시내 곳곳에 가져다 버렸다. 지역 신문에 작품을 찾는다는 분실 공고를 내고, 회수한 작품 26점을 전시장 벽면에 띄엄띄엄 걸었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전체 파도 그림을 볼 수 없겠지만, 작품은 광주 곳곳에 실종된 상태로 소문처럼 존재하도록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회수한 원작 26점과 미회수한 작품을 재현한 174점을 재제작 작품이 전시됐다.

안규철 작가의 공간에서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개념이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아이디어 스케치나 밑그림 등이 담긴 드로잉을 대거 만날 수 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지난 20일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아카이브 리듬’ 개막식에서 안규철 작가가 자신의 작품 ‘두 벌의 스웨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일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아카이브 리듬’ 개막식에서 안규철 작가가 자신의 신작 ‘숲으로 돌아가지 못한 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규철 작가 전시 공간.

지난 20일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아카이브 리듬’ 개막식에서 안규철 작가가 자신의 작품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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