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J에게
[경일춘추]J에게
  • 경남일보
  • 승인 2023.07.27 2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예리 경상국립대학교 지식재산융합학과 전담교수
류예리 경상국립대학교 지식재산융합학과 전담교수


지난주에만 서울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서울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 오기도 힘든 진주를 일주일에 세 번이나 왕복했다고 하면 놀랜다. 하루빨리 남부내륙고속철도가 착공돼 2028년에는 꼭 개통되기를 간절하고 절실히 바란다. 그래도 일이 있음에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서울 출장을 다니기로 결심한 뒤 기차나 버스 안에서 보내는 긴 시간이 별로 지루하지 않다. 왕복 7시간 동안 각종 뉴스도 보고, 밀린 드라마나 영화를 보노라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뭐 ‘아주 멀다’는 의미인 ‘진주라 천리길’이라는 말이 통용되던 시절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제는 기차 안에서 영화 적벽대전(赤壁大戰)을 보았다. 적벽대전은 삼국지 최고의 인기 등장인물인 조조, 유비, 손권, 제갈공명, 주유가 모두 참전한 전투로 한국인이 가장 잘 아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은 주유에게 삼일 안에 조조군의 화살 10만 개를 뺏어오겠다고 장담한다. 주유는 10만 개를 가져올 수 없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훗날 적으로 만날 것을 두려워하여 미리 제갈량을 제거하려는 주유의 속셈이었다. 그런 주유가 36세의 젊은 나이에 최후를 맞이하는데 죽기 직전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이 주유를 낳았으면서 어찌 제갈량을 또 보냈습니까”라고 부르짖으며 세상을 떠난다.

나에게도 라이벌 J가 있었다. 사람들은 나이도 비슷하고 전공 분야도 비슷하여 J와 나를 라이벌로 만들어줬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J를 의식했고, J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곤 했다. J를 이겼을 때는 일주일 내내 기뻤고, J에게 졌을 때는 일주일 내내 우울했다. 그렇게 나의 마음 속에는 항상 J가 같이 있었고, 그렇게 30대가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요즘 J를 생각하면 너무 고맙게 느껴진다. 그 대단한 경쟁심 덕분에 매년 논문도 많이 썼고, 프로젝트도 열심히 했다. 나에게 J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J가 건강하기를 기도하며 J에게 말한다. “J, 우리 멋지게 잘 살자!” 이제 나는 J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의 라이벌은 어디에 가나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라이벌을 의식하는 순간 괴로워진다. 오히려 라이벌을 잘 활용해야 한다. 같이 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주유가 천기를 읽을 수 있었던 제갈량이 자신보다 한 수 위임을 인정했더라면. 훗날 적으로 만날 제갈량을 제거할 생각보다는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더라면. 주유는 훨씬 더 멋진 지략가로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