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남해지맥을 가다 [5]금산~가마봉~빗바위(5코스)
보물섬, 남해지맥을 가다 [5]금산~가마봉~빗바위(5코스)
  • 최창민
  • 승인 2023.07.2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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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탐방지원센터주차장→쌍홍굴·음성굴→보리암→옛 활공장→방송국송신소 갈림길(산불감시초소·지맥합류)→내산 팔각정→임도→가마봉갈림길→망산(망운산)→미화산→빗바위
 

 


나뭇가지는 튼실해지고 가시는 드세졌으며 나뭇잎은 진녹색으로 변했다. 그야말로 숲은 작렬하는 여름 태양의 깊이만큼 짙어졌다. 장마로 인한 폭우로 산행이 순연돼 한달여만에 지맥을 그렇게 다시 만났다. 하지만 취재팀은 고온다습한 날씨에 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것인지, 드센 나뭇가지에 얼굴을 할퀴었고 가시에 찔려 피가 났다. 또 바위 위에서 미끄러져 나동그라지기도 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여름산행임을 절감했다.

남해지맥 5구간은 금산 보리암 아래 능선의 방송국송신소부터 시작해 미조까지이지만 취재팀은 산행의 묘미를 위해 금산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해 쌍홍문을 거쳐 보리암에 오른 뒤 송신소에서 지맥을 만나 산행키로 했다.

가마봉 부근에서 바라본 남해지맥, 지맥은 오른쪽 본섬에서 가운데 망운산, 왼쪽 무명봉 빗바위로 이어져 바다로 잠영한다.
△남해군 상주면 남해대로 918-13 금산탐방지원센터 주차장은 차량도 인적도 드물어 을씨년스러웠다. 주말이 아닌 탓도 있지만 금산·보리암 등산코스가 다양해진데다 산행 열기 또한 예년 같지 않기 때문이다.

1970∼1980년대만 해도 금산 등산객과 보리암을 찾는 신도들이 많아 성업했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성업했던 탐방지원센터 주변의 상점들은 옛 영화를 뒤로한 채 모두 개점휴업상태다. 가게 문틈 사이로 팔다가 남은 빛바랜 종이컵 꾸러미가 이를 대변한다.

산행 1시간이 지났을까. 체중이 늘었는지 오름길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쯤 갑자기 숲속에서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금산 관문으로 옛날에 천양문으로 불렀다가 신라 중기 원효대사가 두개의 굴이 쌍무지개 같다고 해 이름을 바꾼 ‘쌍홍문’이다.

대개의 산행객들은 이 모습을 보고 무지개보다는 해골을 떠올린다. 범인과 다른 원효의 무지개이다.

 
해골을 닮았지만 원효대사는 무지개를 떠올려 이름을 쌍홍문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맞은편에 장군대가 있고 장군대에는 넝쿨식물 송담이 붙어산다. 굴속으로 들어가면 의외로 하늘이 뚫려 있다. 여느 굴처럼 서늘한 기운이 돌고 조금만 앉아 있어도 닭살에 소름까지 돋는다. 석회암 동굴인 듯한데 생김새는 용암동굴처럼 보인다. 기이한 동굴이다. 곧이어 나오는 음성굴은 출입이 금지돼 있다. 이 굴은 ‘사람들을 노래하게 하고 춤을 추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전해진다. 조선의 봉강 조겸(1609)과 미수 허목(1638)이 이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빈 공간이 울림통 역할을 해 신비한 소리를 내는데 이것이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쌍홍문 내부
음성굴을 돌아오르면 은빛 해수관음상이 돋보이는 보리암이다. 구관이 명관, 쌍홍문코스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금산 최고의 지위를 누릴만한 풍광은 여전했다.

‘미조송정 5.21㎞’ 이정표와 ‘산불조심’ 알림글이 있는 방송국송신소에서 지맥에 합류한다. 이때부터 지맥을 침범한 넝쿨식물이 사람을 붙잡았다. 얼굴, 목, 귀 가릴 것 없이 할퀴었다. 맹감이라고 부르는 청미래 줄기가 특히 드셌다. 길을 트기 위해 줄기를 잡아채는데 순간, 가시가 살을 파고들었다. 아뿔싸, 붉은 피가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청미래줄기는 일본에서 ‘사루도리 이바라’ 즉 ‘원숭이 잡는 덤불’이라는 뜻인데 가시가 사람 잡을 판이다. 또 성근 돌을 밟아 넘어지고 또 미끄러졌다. 상체에 신경을 쓰다 보니 발이 어디로 향하는지 분간이 잘 안된 탓이다. 고온에다 습한 날씨, 땀이 눈에 흘러들어 따갑다. 달려드는 모기떼와 날파리, 하루살이, 쉽지 않은 산행의 연속, 그러기를 2시간, 임도 옆 내산팔각정에 다다른다.

남해 바래길이 통과하는 지역으로 사방이 탁 트인다. 주변에는 수만그루의 편백나무가 바다를 이룬다. 1970년대 산림녹화에 매진했던 남해인들의 수고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의 노고는 지금 국립남해편백자연휴양림으로 거듭나 현대인의 힐링처가 되고 있다.

 
잘린 편백나무를 실어나르는 트럭
임도개설로 지맥이 훼손돼 붉은흙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전에 없던 임도가 개설돼 있다. 일부 편백나무는 베어져 길가에 널브러졌고 산은 붉은 속살을 드러냈다. 심지어 일부 구간에는 드러낸 속살에다 시멘트를 덧발라 놓았다. 그때 잘린 편백나무를 가득 실은 트럭이 그 길을 따라 쿵쿵거리며 내려왔다. 그 모습이 마치 70년대 벌목꾼들을 연상케 했다. 혹여 베어진 편백나무 이송을 쉽게 하기 위해 길을 낸 게 아니길 바란다.
 
임도개설로 지맥이 잘려져 있는 구간
이유야 어떻든 미래세대에 물려줘야 할 선대의 소중한 선물, 나무와 산줄기를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이 훼손하고 있는 장면이다.

과연 이번에 임도를 낼 때 단 한번만이라도 ‘지맥훼손’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진행했을 때 산이 잘려져 길이 사라졌다. 임도로 내려왔다가 다시 지맥의 산길을 찾은 뒤 올라야 했다.

산 아래 송정지는 일제 때 조성한 저수지로 어업전진기지였던 미조인들의 식수원으로 쓰였다. 마치 ‘천상의 샘’이라고 할 만큼 에메랄드 물빛이 곱고 앙증맞다.

 
천상의 샘이라고할 만한 에메랄드빛의 송정지
빗바위부근에서 바닷물에 손을 담그며 본섬지맥을 마무리한다.
가마봉(453m)갈림길, 작은 안내판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여전히 고온에 습한 날씨는 더욱 산행을 힘들게 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나가면 이름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미조항이 등장한다. 저 멀리 해안 천하몽돌해수욕장과 송정솔바람해수욕장을 비롯해 설리스카이워크까지 보인다.

가야할 길, 여러 개의 섬들이 일렬로 서 바다로 꼬리를 감춘다. 남해 지맥이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구간이다. 뒤를 돌아보면 암릉이 기운찬 금산이 어느덧 아스라이 멀어져 있다. 아주 잠시 온 것 같은데 저 멀리에 있다. 인생의 한 굽이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바다냄새를 맡은 지맥은 급격히 고도를 낮춘다. 도시와 항구 상록수림이 어울려 사람살기 좋은 곳, 미조항을 거쳐 망산(망운산·287m)을 넘어 마지막 봉우리 미화산에 오른다. 빗바위 끝에서 조·호도를 바라보며 바닷물에 손을 적시는 것으로 남해지맥 산행을 마무리한다.

최창민·김윤관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영지버섯
선인들의 선물, 편백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내산팔각정
남해지맥 마지막구간인 빗바위 부근, 멀리 조도 호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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