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요양원에 계신 참전용사
[경일춘추]요양원에 계신 참전용사
  • 경남일보
  • 승인 2023.08.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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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참진주요양원 부원장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하와이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 안치 중인 참전용사 유해 7위(位)가 조국으로 봉환됐다. 봉환된 유해는 6·25 전쟁 중 미군이 수습했거나 북한에서 발굴된 뒤 미국으로 송환된 유해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공항에서 유해를 거수경례로 맞이했다.

2년 전 근무했던 요양원에는 6·25 참전용사들이 더러 계셨다. 90대 할아버지들로 거의 치매 증세를 갖고 계시지만 군번과 소속 부대를 정확히 기억하신다. 그 시절 불렀던 군가를 우렁차게 부르는 할아버지도 계신다. 최근 기억은 희미하지만 옛 기억은 또렷한 치매 증세다.

김 할아버지는 10사단 52연대 소속이었다. 21살 때 군 입대를 원했으나 신체검사에서 탈락했다, 24살 때 다시 자원입대했다. 남한이 공산화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소총은 사격이 제대로 안 됐다. 종일 포복 자세로 기어 다니느라 총에 모래가 끼었기 때문이었다. 양구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어 지금도 불편하다.

박 할아버지는 12사단 52연대 소속으로 전투를 하다가 총상을 입었으나 제대를 못 했다. 대구로 후송됐다가 논산훈련소에서 조교로 5년 근무한 뒤 제대할 수 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21사단 65연대 소속이었다. 제주도 육군 제1 훈련소에서 불렀던 군가를 우렁차게 부른다. 할아버지 앞에서 주먹손을 아래위로 흔들면 군가를 부르신다. 손을 힘차게 흔드시며. 병원 외래진료를 가실 때마다 참전용사 모자를 꼭 쓰는 할아버지도 계신다. 사물함에 소중히 보관했던 훈장도 가슴에 단다. 생사를 넘나드는 시간이었지만 온몸으로 지켜낸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계신 것이다. 치매도 그 자긍심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듯했다.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은 제주도 훈련소에서 4~16주 훈련을 받고 전선에 투입됐다. 전투상황에 따라 훈련기간은 들쭉날쭉이었다. 총알받이 처지였지만 살아남아 가난 속에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길렀다. 가족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다가 요양원에 오셨다. 하와이에서 봉환된 참전용사 못지않게 살아계신 주변의 참전용사들에게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요양원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이 기억하는 제주 훈련소 군가의 일부는 이렇다. “제주 누렁(?) 벌판에 바람 소리 거세게 분다. 한나라 젊은이 우리 기상이다. 한라산 높이 떠오르는 아침 해는 민족기상이다”(할아버지들은 더 기억하지 못했다. 70여 년 전 불렀던 군가를 기억하는 치매 어르신 앞에 가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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