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거창국제연극제] 무더위 잊게 만든 표정·몸짓에 '엄지 척’
[제33회 거창국제연극제] 무더위 잊게 만든 표정·몸짓에 '엄지 척’
  • 백지영
  • 승인 2023.08.06 18: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 팬터마임 듀오 보덱커·네안더 ‘데자뷔’
가족 단위 방문객 설렘 가득…환호로 화답
관객 “자녀와 보기 좋아”·“지역 특화 필요”
지난 5일 오후 7시 50분께 거창군 위천면 수승대. 지난달 28일부터 오는 11일까지 열리는 ‘제33회 거창국제연극제(이하 연극제)’ 중간 풍경 취재차 방문한 수승대는 주차장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후텁지근한 기운이 에워쌌다.

이날 낮 최고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면서 올해 가장 더운 날씨를 보였던 거창지역은 연극제 공식 참가작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8시까지도 체감온도가 30도를 웃돌면서 찜통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공식 참가작 공연이 펼쳐지는 수승대 축제극장과 돌담극장으로 향하는 관객들의 발걸음은 더위도 잊은 듯 가벼웠다.

이날 연극제는 낮 시간대 5편의 무료 공연과 저녁 시간 2편의 유료 공연으로 관객을 맞았다. 유료 공연으로 선보인 이날 공식 참가작 2편 모두 매진됐는데, 특히 독일 팬터마임 듀오 보덱커·네안더의 ‘데자뷔’ 공연은 사진이 연극제 포스터나 현수막 등에 사진이 전진 배치돼 이른바 ‘간판 공연’으로 여겨졌던 만큼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렸다.

대사 없이 표정과 몸짓만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연극인 팬터마임 특성상 연령에 따른 제약이 덜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이 유독 많았다.

“엄마, 독일 아저씨들한테 뭐라고 인사하지?” “만나면 ‘헬로우’만 해. 독일어 인사는 몰라.” “그럼 ‘나마스떼’는 어느 나라 인사야?” 엄마 손을 꼭 잡고 낯선 유럽 아저씨들의 공연을 보러 발걸음을 떼는 어린이 관객의 목소리에서 설렘이 가득했다.

‘데자뷔’ 공연에 나서는 보덱커와 네안더는 독일의 클래식 팬터마임 듀오로,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에 영향을 줬던 현대 팬터마임 거장 마르셀 마르소의 수제자들이다. 함께 호흡을 맞추며 30년간 세계 각국에서 팬터마임 공연에 나서왔는데, 국내에서는 이번 연극제를 통해 처음으로 관객을 만났다.

대사가 없는 작품 특성상 공연에 앞서 소개말에 나선 황국제 거창국제연극제 예술감독은 “말없이 행동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연극 특성상 별도 자막이 없지만, 배우들의 몸짓과 손 표현을 통해 공연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문’, ‘욕망’, ‘베를린’ 등 크게 6막으로 구성된 작품은 대단한 무대 장치나 소품 없이도 관객들을 팬터마임의 매력으로 초대했다. 얼굴을 하얗게 분칠하고 검은색 재킷과 바지, 와이셔츠 차림으로 등장한 두 배우의 동작에 무대는 탭댄스장, 패션쇼 런웨이, 기차역 에스컬레이터 등 수시로 장소를 바꿨다. 객석을 꽉 채운 관람객들은 더운 날씨에 연신 부채질하면서도 두 배우의 재기 넘치는 연기에 엄지를 치켜들고 휘파람과 박수, 환호로 화답했다.

특히 무대와 객석에 고루 조명이 내리쬐던 다른 막과 달리, 무대 위 가로로 긴 직사각 공간에만 조명이 가도록 한 3막 ‘신문’에서는 처음으로 ‘브라보’ 소리가 나오는 등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코트를 입은 남성이 신문팔이에게 구매한 신문을 한번 펼칠 때마다 신문 지면은 배로 면적을 넓혔다. 코트를 입은 남성은 어느 순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 버린 신문으로 원을 만들듯 구겨 자신의 얼굴을 뒤덮었다. 얼굴을 감싸고 있는 줄만 알았던 동그란 신문 뭉치가 어느 순간 몸통에서 분리돼 독립적으로 날아다니자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야외 공연장 특성상 무더위는 물론 외부 소음에서도 자유롭지 못해, 배경음 없이 극이 진행된 일부 시점에는 자동차 경적이나 근처 식당 방문객의 대화 소리가 들려와 집중을 깬 점은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백경화(38·거창) 씨는 “지역에서 열리는 만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극제를 찾았다”며 “두 아이와 보기 좋은 작품인 것 같아 오늘 공연을 택했는데, 언어는 없지만 함께 보기 좋았다”고 평했다. 김혜진(38·인천) 씨는 “고향을 방문한 김에 가족 6명이 연극제를 찾게 됐다. 재미있게 봤다”며 “애들도 처음에는 조금 지루해하는 것 같았지만 중간부터 재미있게 보더라”고 설명했다.

연극제가 더욱 내실을 다지길 기원하는 따끔한 조언도 있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거창에서 열리는 연극제를 20대 시절부터 포스터를 모아가며 관람해온 신연숙(50·거창)씨는 파행 끝에 지난해부터 거창군이 추진하는 연극제가 반가우면서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짚었다. 그는 “일상을 벗어나 이렇게 공연을 본다는 것 자체는 행복하다”면서도 “올해 연극제만 3번째 관람인데, 퍼포먼스 위주에 서울 대학로에서도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아직은 거창만의 특화된 연극제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인구 소멸 시대, 유동 인구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지역 특화 문화 콘텐츠로 컬쳐 노믹스를 이뤄야 한다”며 “국제연극제를 치르는 만큼 거창에서만 가능한 제대로된 작품을 선보이는 극단도 만들고, 연극제 전담 기구도 꾸리길 바란다”고 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지난 5일 거창군 위천면 수승대 축제극장에서 ‘제33회 거창국제연극제’에 참가한 독일팀 보덱커&네안더가 판토마임 ‘데자뷔’를 공연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5일 거창군 위천면 수승대 축제극장에서 ‘제33회 거창국제연극제’에 참가한 독일팀 보덱커&네안더가 판토마임 ‘데자뷔’를 공연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5일 거창군 위천면 수승대 축제극장에서 ‘제33회 거창국제연극제’에 참가한 독일팀 보덱커&네안더가 판토마임 ‘데자뷔’를 공연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