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술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필자는 제법 오래전부터 스카우트와 인연을 맺어 왔다. 아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스카우트 행사에 따라다니게 된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나중에는 스카우트 지도자 훈련 과정을 이수했으며 진주모닥불 스카우트 단위원장을 맡았었다. 직장인 대학에서도 비록 엉성하긴 했지만 대학생 스카우트 동아리를 조직해 코로나19 전까지 연을 이어 나가기도 했다. 그런 인연으로 세계잼버리에 줄곧 참여하고 있는 IST(자원봉사 국제운영요원)인 지인으로부터 관련 소식을 듣곤 했다.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직업군들로 구성되는 IST가 이번 잼버리에도 1만여 명이 참여해서 스카우트의 본질 사수를 위해 묵묵히 봉사했다고 한다.
스카우트 잼버리의 기본 취지는 ‘청소년이 자연 속에서 야영하며 어려운 상황들을 해결하고 이겨내는 도전 정신 함양’인 걸로 알고 있다. 큰아들은 영국에서 시작된 스카우트 창설 100주년 기념으로 2007년도에 영국에서 개최된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이하 ‘잼버리’)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 당시 고1 학생으로 대입시 준비 분위기상 동참이 어려운 환경이었음에도 잼버리는 버킷리스트였다. 물론 그 잼버리에서 윌리엄 골딩의 1954년 작 ‘파리대왕’ 소설의 스토리 만큼이나 힘든 일들을 겪기도 했다는데 오히려 그 경험이 관계의 어려움을 헤쳐 나감에 도움된다고 한다.
즉, 잼버리의 핵심은 ‘야영’이어서 새만금 간척지가 이번 개최지로 정해졌었다. 물론 여러 가지 여건상 무리였다는 비난도 있지만 말이다. 또한 어중잽이 지방분권으로 인한 부족한 재정 확보 차원에서 각 지자체는 큰 대회를 유치해 지역의 발전 동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여수는 ‘2012 세계박람회(EXPO)’를 치루면서 사회간접시설을 제대로 확충해 멋진 관광도시로 업그레이드되는 밑천으로 삼기도 했다.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또한 전북도가 이러한 길을 가고자 했던 것 같기에 그 자체를 너무 탓할 건 아니다.
아무튼 기록적인 폭우와 폭염에 태풍까지 겹치면서 야영장에서 퇴영 후 여행하는 최초의 ‘전국의 K-잼버리’가 됐다.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수습한 덕분에 전화위복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세계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도 “도전에 맞서 오히려 더 특별한 경험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으니 말이다. 최악의 사태는 막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잼버리 정신이 훼손된 파행까지 덮을 순 없다. 호텔에서 재우고 관광시켜주고 무리하게 진행한 공연 등은 잼버리 정신상 본말전도이기 때문이다.
파행은 명백한 인재였던 만큼 관련 결정권자들이 권한 크기에 따라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하다. 다만 이번 사태는 ‘기후 재앙’이라는 특이한 사유로 야기된 ‘재난’인 만큼 인적 책임에 에너지를 소진하기보다는 사후약방문책에 대한 논의가 더 치열하게 전개돼야 한다. 혹독한 대가를 치렀음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제2의, 제3의 ‘새만금 잼버리 사태’가 언제든지 또 발생할 수 있다. 재난은 국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어서 각 지자체는 향후의 국제행사 유치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제행사의 특성상 중앙·지방 정부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어중잽이 지방분권 체제인 상황에서 지자체의 무분별한 국제행사 유치가 능사인가. 그렇다고 해서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국제행사 유치 지원 기준을 까다롭게 변경해서 그 활성화를 가로막는 것 또한 바람직할까.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컨트롤타워의 애매함’을 어떻게 정리해 나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나아가 무엇보다도 이참에 그 근원인 기후 재앙을 줄여 나갈 획기적인 실천 방안까지 제시해야 한다.
부디 파행 책임에 자유롭지 않은 중앙·지방 정부 및 여야 당사자들의 상대를 향한 면피용 삿대질은 이젠 그만두길. 부끄러움과 비용은 국민 몫으로 만들어 놓고선 창피하지도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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