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올 추석은 무엇이 달라졌던가요?
[여성칼럼]올 추석은 무엇이 달라졌던가요?
  • 경남일보
  • 승인 2023.10.0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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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사단법인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정윤정 사단법인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정윤정 사단법인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이번 추석 연휴는 임시공휴일 덕에 길었다. 가장 기뻐했을 사람은 직장인이라 생각했는데 직장인보다 부모님들이 더 반기셨다. 명절이 가족 단위 행사다 보니 가족이 함께할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는 것은 좋은 일 아니던가?

휴일에 거는 기대는 각자 다를지언정 올 추석엔 가는 곳마다 변화를 보았다. 시댁에 가서는 간소해진 음식과 차례상을 보았다. 새벽같이 아버님 차례를 치르고, 조상님 차례를 모시러 간 큰댁에서는 다가오는 해부터 설날 차례가 없어지고, 추석 차례만 다 같이 모신다고 했다. 이 어찌 된 일인가? 듣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계시는 한 현실이 될 줄 몰랐다.

변화를 쉽게 결정하고 하루아침에 실천하는 것이 지성적이고 세련된 일일까? 살아온 시대 배경과 그 환경에서 살아낸 역사를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평화로운 변화란 있을 수 없다. 그 시대를 존중하며, 현시대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서로에게 답답함을 느끼지 않고 큰 갈등 없이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명절 차례상 하나 변하는 데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각자 생각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데 받아들이는 시간을 투자한 덕에 평화롭게 변화를 맞았다.

추석 연휴 ‘신병’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새로 부임한 중대장은 ‘내 중대를 최고의 중대로 만들고 싶은 포부’가 남달랐다. 그래서 군대 문화 개선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각자에게 주어진 권리는 그 누구도 침해해선 안 된다. 이것이 중대장이 만들고자 하는 선임에 의한 후임 폭력 없는 군 문화다. 당연한 이야긴데 멋지다. 그런데 선임이 후임에게 ‘축구 하자’, ‘매점 가자’ 편하게 말하지 못하는 갈등 단계가 온다. 축구 하기 싫고, 매점 가지 싫은데 선임이 시켜 강제로 했다는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선임들이 징계를 받는다. 선임들은 자신들의 신임 시절, 이유 없이 맞고, 선임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욕먹고, 구석에서 피눈물 흘리며 자신이 짐승 취급받는 것 같던 때를 떠올리며 억울해한다. ‘우리는 후임들한테 이러지 말자’ 다짐하며 선임들 스스로 변화하려 노력한 것을 몰라주는 중대장에게 불만을 표한다. 중대장은 군의 생명인 ‘상명하복’을 병사들이 어겼다며 완전군장을 한 채 모든 일과를 수행할 것을 지시한다. 이때 불시에 나타난 여단장이 병사들의 체벌 상태를 보고 대노 한다. 군 문화를 바꾸겠다던 중대장 본인이 장병들의 점심시간, 휴게시간, 수면시간 권리도 뺏은 채, 하루 종일 완전군장을 하는 가혹행위를 한 것이다. 속도를 안 지키는 변화란 참 어렵다.

문득 내 정체성이 궁금해졌다. 양가 부모님과 어른들이 팔순을 넘기시고, 나의 자녀는 군을 제대하고, 중학생도 있다. 나는 부모 세대일까? 자녀 세대일까? 부모님께 가면 자녀인데, 자녀와 함께 있으면 부모다. 우리 아이들이 느끼기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변화가 필요한 사람일까? 우리 아이들이 바꾸자고 할 때 나는 어떤 속도로 수용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바꿔야 하는 이유를 답답하지 않은 말투로 나에게 설명해줄까? 고작 100년 살면서 우린 참 많은 것을 하고 산다. 영아기·유아기·아동기·청소년기·청년기·중년기·장년기·노년기. 어쩜 그리도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살까? 고작 100년이면서. 그러니 하루라도 먼저 산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살아보며 경험해봤으니 그 시기 마음과 감정 상태를 이해한다. 그러니 웬만한 것은 받아준다. 바꾸자고 하는 마음도, 답답해하는 마음도, 좀 있다 후회하며 부끄러워할 마음도. 웬만한 것은 안고 가는 것이 어른이다. 그러니 나는 아직 어른이 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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