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령 20000호를 맞는 경남일보의 다짐
[사설] 지령 20000호를 맞는 경남일보의 다짐
  • 경남일보
  • 승인 2023.10.0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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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가 6일자로 지령 20000호를 맞습니다. 창간 114년 연륜의 일간지로는 나이테와 많이 어긋나는 지령입니다. 의아한 느낌도 들겠지만 창간 이래 경남일보의 궤적과 시대적 배경, 지역적 한계, 사회·문화적 환경 등에 비추어 본다면 스스로에게 지령 20000호는 가녀린 점 하나라도 찍어두고 싶을 만치 대견스러운 숫자입니다.

경남일보(慶南日報)는 1909년 10월 15일 당시 경상남도청 소재지였던 이곳 진주에서 창간호를 내면서 고고성을 울렸습니다. 역사적인 창간호가 안타깝게도 일실되어 있다가 2003년 지역의 한 농가에서 발견돼 지금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있습니다. 찍은 지 94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이에서도 보듯 경남일보는 그 발행 자체가 길이 전승할 가치를 지닌 지역 문화사라 할 것입니다. 민간인 유지들이 뜻을 모아 순수 민간자본의 주식회사 체제로 출발하면서 민지(民智)개발과 실업(實業)장려를 표방했습니다. 이 사실은 현대사가 기억해야 할 일이라 않을 수 없습니다. 최초의 지방지, 당대 유일의 지방산문이란 의의에 못지않은 문화사적 의의가 크다고 하겠기 때문입니다.

서울 황성신문 사장과 연해주에서 발행된 민족지 해조신문의 주필을 지낸 장지연이 창간 주필로 왔습니다. 지역에 한 점 연고도 없는 당대 굴지의 유명 언론인이 참여하여 제작을 지휘하고 스스로 글을 썼습니다. 일제 강제 합방 직후인 1910년 10월 11일자에는 애국지사 황현의 저 유명한 절명시를 지면에 올려 정간도 당했습니다. 창간 직후 한때는 신문사 부설 야학교를 운영하면서 장지연은 한문 과목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출범 당시 경남일보의 위상과 기개를 가늠해볼 수 있겠습니다.

일제 강점 초기 당국의 혹독한 감시와 간섭, 다수 주주 확보가 어려웠던 여건 속에서 신문사는 오래 버텨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1915년 연초를 전후하여 문을 닫고 긴 휴면기에 들었습니다. 발행 5년여 동안 지령은 887호였습니다. 초기 운영난 때문에 격일(隔日) 발행이 많았던 탓입니다.

광복 때까지 30여년의 세월은 동면(冬眠)처럼 길었지만 1946년 3월 1일 중창간했습니다. 겨울 내내 화로 깊숙이 밑바닥에서 꺼지지 않았던 불씨가 살아나듯 경남일보의 발행혼은 광복과 더불어 새싹을 다시 틔워올린 것입니다. 1949년 주필이던 설창수 선생이 주도한 국내 최초의 지방문화축제 영남예술제(개천예술제) 행사도 그 중심에 경남일보가 있었습니다. 6·25 전란 때는 사옥이 불타 발행 중단의 위기에 처해서도 인쇄업자의 소형 인쇄기를 빌려 신문을 찍었습니다. 1952년 7월 15일자에는 발췌개헌안으로 부산정치파동을 몰고온 자유당 정권과 이승만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그 직후 신문사는 괴한들의 테러 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1966년 5월에는 고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의 사카린 밀수 사건을 국내 최초로 특종 보도하여 언론사(史)에 우뚝 그 이름을 섭새겼습니다.

경남일보는 1980년 신군부의 ‘지방신문 1도 1사’ 방침에 또 한 번 셔터를 내리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그해 11월 25일 지령 9342호로 강제 폐간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폐간에 이어 두 번째 폐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폐간사에서 쓴 ‘불사조의 기개’란 문구처럼 1989년 11월 26일자로 불사조처럼 복간했습니다. 신군부에 의한 강제 폐간 9년만이요, 1914년 창간을 포함해 세 번째로 가동된 윤전기 소리였습니다.

1989년 복간 이후 현재까지는 신문 발행 여건이 무척 어렵습니다. 경남 행정의 중심 축을 부산에서 창원으로 옮긴 이후 중부지역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생사의 하나로 복간한 경남일보는 낙후 서부지역에서 발행하는 지역신문으로서, 취재와 경영 여건이 상대적으로 크게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중동부 경남의 급속한 공업화·도시화로 신문발행 환경이 앞서가는 동안 서부경남은 취약합니다. 이런 여건 속에서 어렵사리 쌓아온 20000호입니다. 그 20000호에는 낙후 지역 사람들의 하소연과 울분과 아우성이 실렸습니다. 그 목소리를 충실히 대변하고 전달하려는 그동안의 열정이 담겼습니다.

20000이란 발행 호수는 결코 자만이거나 자랑일 수 없습니다. 그저 올곧은 신문을 지향해온 정신의 이정표이자 긍지로 여기고자 합니다. 지금보다 어려웠던 시대, 더 힘든 여건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았던 과거를 돌아보며 새로운 다짐의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읽을 가치가 있는 신문, 읽기를 권할 만한 신문이 되도록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더욱 봉사하는 지역 문화센터 역할을 다하기 위해 더 많이 뛰자는 각오를 거듭 가다듬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향토의 횃불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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