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가을 운동장이 유난히 쓸쓸한 까닭은?
[경일춘추]가을 운동장이 유난히 쓸쓸한 까닭은?
  • 경남일보
  • 승인 2023.11.2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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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주 거창교육지원청 교육장
이명주 거창교육지원청 교육장


조선시대, 과거시험 최종 합격자 33명은 임금 앞에 나아가 전시(展試)라는 마지막 시험을 치러야 했다. 일종의 논술인 전시의 문제를 책문(策問)이라 했다. 임금이 대책을 묻는다는 뜻, 고위 관료가 될 합격자들의 정치철학이나 정책 현안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대부분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견해를 물었고 합격자들은 자신의 소신을 아주 길고도 간곡하게 써 내려갔다. 그런데 광해군은 어느 해 전시에서 아주 엉뚱하게 느껴지는 문제를 제시했다.

‘섣달 그믐 날 밤이 유난히 쓸쓸한 까닭은 무엇인가?’

책문을 대한 응시생들은 몹시도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전혀 예상 밖의 문제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수능이 끝난 며칠 뒤,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았다. 가을날 늦은 오후, 학교 운동장은 적막했다. 휑한 운동장에는 가을나무의 긴 그림자들과 함부로 나뒹구는 낙엽들 뿐, 노는 아이 하나 없었다. 골목과 공터와 운동장 따위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지 꽤 오래 됐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새삼 쓸쓸하고 아팠다.

통계를 찾아보니 30년 전인 1994학년도 수능 응시생은 약 80만 명이었다. 2024학년도 고3 응시생은 39만여 명, 한 세대 만에 그야말로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올해 수능을 치른 39만 여명이 응시생의 부모가 될 무렵이면 어떻게 될까? 이 추세대로라면 20만 명 이하, 심하면 10만 명 초반에 그칠 가능성도 아주 없지도 않다.

전국이 인구전쟁 중이다. 각 지자체마다 인구 유입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농어촌 지역의 인구 유입 정책은 필사적이다. 자연 증가가 불가능한 시대, 다른 지역의 인구를 영입하는 사회적 증가만이 유일한 활로다. 이를 위해 각종 인프라 구축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교육계도 마찬가지, 우리 거창도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증가 정책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 아닌가! 옆 동네 인구를 유입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인구 절벽에 대한 수많은 진단이 나왔고 그만큼 다양한 정책도 펼쳤지만 지금으로서는 백약이 무효인 듯하다.

그래서 이 나라의 석학, 정치인, 관료 등 모든 이들에게 다시 물었으면 한다, ‘가을 운동장이 유난히 쓸쓸한 까닭은 무엇인가?’

누군가, 무릎을 탁 칠만한 인구 증가 비책을 내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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