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감기와 코카콜라
[경일춘추]감기와 코카콜라
  • 경남일보
  • 승인 2023.11.26 14: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초등 몇 학년 때였는지 또렷이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 3~4학년 때 즈음일 것 같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감기에 취약한 편이었는데, 그해 겨울에도 감기몸살에 걸려 앓아눕고 말았다.

감기에 걸렸다고 선뜻 병원에 가던 시절도 아니었으므로, 필자는 어머니께서 시키시는 대로 아랫목에 누워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쓴 채 초저녁부터 끙끙 앓고만 있었다. 땀을 흠뻑 내면 감기가 낫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던지, 어머니께서는 딸의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펄펄 끓어오르는데도 행여 이불을 차 버리지는 않나 꼭꼭 단속해주시며 밤새 곁을 지키셨다.

그러나 그해 감기는 유독 심해서 약국에서 처방받아온 쓴 약과 뜨뜻한 아랫목 치성에도 불구하고 밤새 열이 내리지 않았다. 두 분이 번갈아 이마에 손을 대보고 맥박도 재보고 수은체온계로 확인하며 애를 쓰셨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새벽이 다 되도록 고열에 신음하는 내 모습을 보시고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드셨던 건지, 어머니께서 갑자기 밖으로 나가셨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고, 찬 새벽공기를 가득 안고 들어오신 어머니께서 나를 일으켜 앉히셨다. 그러고는 “이것 좀 마셔봐라”시며 차가운 병 주둥이를 내 입술에다 갖다 대셨다. 동네 점방에서 냉장된 코카콜라 한 병을 사 오신 거였다.

아, 그때 열에 들떠서 마신 콜라 한 병이 얼마나 시원하고 달달하고 톡 쏘는 맛이었는지, 이루 설명할 길이 없다. 한방에서 자고 있던 동생들도 모르게, 그렇게 나 혼자서만, 어머니의 살뜰한 손길을 받으며 한 병을 거지반 다 마셨으니 말이다.

코카콜라의 마법 덕분이었던지 다행히 곧 열은 내렸고, 나는 하루 더 방바닥에 누워 뒹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날 아침 잠에서 깬 동생들이 빈 콜라병을 보고는 “나도, 나도…” 하며 칭얼대던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듣기 좋게 귓가를 울렸더라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 없는 사족일 테다.

엊그제 필자는 또 감기몸살에 걸렸다. 워낙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서 진찰받고 주사 맞고 빨리 낫기 위해 몸부림(?)치는 편인데, 이번에는 회복이 여의치 않다. 몸살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채 나선 출장길, 편의점 온장고에서 생강차를 한 병 꺼내다가 문득 냉장고에 진열된 차가운 코카콜라 병에 눈길이 갔다. 맏딸의 숙명이랄지, 연년생 남동생들에게 뭐든 양보하면서 자라야 했던 필자가, 유일하게 어머니를 독점할 수 있었던 그리운 그 순간, 병치레와 코카콜라에 얽힌 추억이 떠올라 주섬주섬 써보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