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 작가미술관 길을 묻는다](5)용인 백남준아트센터
[공립 작가미술관 길을 묻는다](5)용인 백남준아트센터
  • 백지영
  • 승인 2023.11.2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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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작품’ 단순한 전시공간 넘어 학술적 역할 모색

설명이 필요 없는 이름 ‘백남준’의 공간
실험적 작가 위한 열린 미술관 자리매김

미디어아트 미학적 성취 분주한 행보

백남준 작품 ‘로봇-K456’.

백남준, 명성을 얻은 계기나 장르·대표작 같은 수식어를 들며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작가. 비디오 아트를 중심으로 현대 예술에 또렷한 족적을 남겨, 미술 교과서 등에서 익숙하게 이름을 접할 수 있는 거장이다.

이러한 작가의 명성 때문일까,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는 국내 공립 작가 미술관 중 가장 많은 관람객의 사랑을 받는 미술관이다.

 
백남준아트센터 전경.
백남준아트센터 뒷 동산에서 바라본 아트센터 풍경. 백남준 작품 ‘트랜스미션 타워’와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조용히 연주하라’ 등 작품이 건물 뒤편에 설치돼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표 ‘2022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백남준아트센터의 연간 관람객은 14만 7966명으로 국내 공립 작가 미술관 중 큰 규모를 자랑한다. 문체부가 지난 2020년 처음으로 실시한 전국 공립미술관 평가 인증 결과 전국 55곳 중 자료 수집과 관리의 충실성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홍콩·일본·독일 등을 거쳐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해 왕성한 활동을 펼친 예술가였다. 경기 용인과는 특별한 인연이 없었지만, 경기도의 적극적인 유치 공세가 백남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경기도는 2001년께 백남준 이름을 딴 스튜디오를 경기에 유치하기로 뉴욕 백남준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고, 그의 시대별 주요 작품을 대규모로 구매해 미술관 개관 준비에 착수했다. 백남준은 용인 부지 확정, 건물 설계 등 절차를 지켜봤지만 개관을 얼마 안 남겨두고 타계한다.

 
백남준 작품 ‘TV정원’ 옆으로 가족 단위 관람객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백남준의 시대별 주요 족적을 사진과 함께 선보이는 아카이브 공간.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

백남준은 생전 백남준아트센터 설계 도면에 이곳의 임무를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직접 규정한다. 단순하게 그의 작품만 돌려 가며 전시하는 공간이 아닌, 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주는 것은 물론 자신처럼 실험적인 작가들이 계속 활동하는 공간으로 가기를 희망했다.

미술관은 이러한 작가의 바람에 맞춰 매년 소장품전을 1~2회 선보이는 것과 함께 동시대 미디어아트 작가를 조명하는 전시에도 나서고 있다.

백남준의 기존 작업실 내 비디오 아카이브 전체를 비롯해 작업실 일부를 소장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아카이브를 계속해 보존하고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2전시실에서 영상 작품을 감상 중인 관람객.

이러한 노력은 백남준아트센터 누리집을 통해 접속할 수 있는 ‘백남준 비디오 서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백남준의 주요 비디오 작업을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감상·연구할 수 있는 웹페이지로, 2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비디오 작업은 물론 연계 심포지엄이나 논문 등까지 모두 한 번에 볼 수 있는 일종의 ‘디지털 공유지’다.

혹자는 ‘백남준의 작품들을 디지털 환경에서 볼 수 있으면 전시를 보러 오겠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작품과 전시는 엄연히 다른 영역인 만큼 문제없다는 게 아트센터 측 생각이다.

구축에 많은 시간이 든 것은 물론 예산을 아껴가며 만들어야 해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이제는 백남준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꼭 둘러보라고 권하는 자랑거리가 됐다.

 
백남준과 동료 예술가 마리 바우어마이스터의 공동 작품 ‘피아노와 편지’.
◇연구·출판부터 VR·국제예술상까지

많은 사람들은 미술관을 떠올릴 때 전시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 작품 전시는 미술관이 아닌 전시실 대관만으로도 가능하다. 미술관이 빛을 발하는 것은 전시와 함께 연구·수집·보존·해석을 통해 사회에 교육과 문화 향유, 성찰과 지식 공유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국내 많은 공립 작가 미술관은 적은 인력 구조와 예산 문제 등으로 전시를 선보이는 것만으로도 급급한 경우가 많다. 간신히 전시 연계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게 고작인 곳도 부지기수다.

반면 백남준아트센터는 여타 작가 미술관과 달리 비교적 넉넉한 인력으로 전시 외적인 행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선 연례 심포지엄 ‘백남준의 선물’을 비롯해, 연계 논문집 ‘NJP 리더’를 오픈 소스로 발간하는 등 학술 연구와 출판 등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채영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운영실장은 “개관 초부터 작가 미술관이라는 특징 그리고 백남준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학술 측면은 놓치면 안 된다고 미술관 내부적으로 합치를 봤다”고 밝혔다.

 
백남준 작품 ‘스위스 시계’ 등이 전시된 공간.
“백남준이 단순히 로봇과 비디오 아트를 만들었다고 ‘미디어아트의 교황’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닙니다. 남긴 글이 참 많은데, 미학·철학은 물론 어떤 기술 환경에서 작품이 나왔는지를 알 수 있어서 의미가 커요. 이론적으로 가치 있는 글을 많이 남긴 만큼 이걸 총서로 펴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미술사적으로 큰 가치를 가진 백남준의 첫 개인전을 남아있는 사진 자료 등을 바탕으로 VR(가상현실)로 구현하거나, 현대 미술에서 미디어아트의 미학적 성취를 모색하는 ‘백남준 국제예술상’을 운영하는 등 분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백남준 작품 ‘TV 물고기(방송 물고기)’.
◇단순 ‘기념관’은 싫어…소장품 정책 개편 눈길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있는 것과 달리, 한 작가만을 위한 기념관으로 기능하는 것을 지양한다.

이 실장은 “작가의 작품들로 케케묵은 전시만 이어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백남준은 현재성이 계속해 유지되는 작가인 만큼, 그를 현재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남준이 과거에 뭘 했는지 알리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당시 선보인 작품을 통해 현재와 어떻게 대화하고 호흡하는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백남준의 후예’들에 주목하는 것을 넘어, 백남준을 몰랐던 작가들에게도 과감히 문을 개방한다. 백남준을 모르고 작업을 했더라도, 미디어아트를 이해하고 선점하는 측면에서 백남준과 맞닿는 작품 행보를 선보인 작가라면 발굴해 소개하는 것이다.

 
가상 현실을 통해 백남준을 만날 수 있는 VR 전시 체험 공간.
백남준아트센터는 지난 2019년 소장품 정책 대전환에 나선다. 미술관이 어떤 작품을 소장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발로다.

이전까지는 백남준과 백남준 연계 작품을 수집하는 게 소장품 정책이었다. 백남준 이외의 작가 작품도 들여오긴 했지만, 백남준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주요 작가로 한정됐다.

하지만 전시와 소장품의 방향성이 같아야 한다는 판단하에, 개관 10주년을 즈음해 과감한 개편에 나섰다.

기존 정책으로는 동시대 작가 전시에 나서거나 미술관 의뢰로 제작한 작품을 선보여도, 이들 작품을 미술관이 소장할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이 실장은 “미술관 건립 당시부터 동시대 미디어아트 전문 국공립 미술관을 표방해 왔다”며 “동시대 작가 작품도 구매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꾼 것은 동시대 작가들과 발맞춰가는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라고 힘주어 말했다.

 
백남준의 뉴욕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 만든 ‘메모라빌리아’.
이채영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운영실장
“단순 전시 넘어 ‘백남준식 사고’ 확장 목표”
이채영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운영실장


이채영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운영실장은 백남준아트센터가 ‘단순히 전시만 하는 공간’아 되기는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남준의 실험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백남준을 관람객들에게 더 많이 알리는 게 목표”라며 “백남준식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리기에 앞서 전위 예술가로서도 인상 깊은 행보를 보인 작가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이를 토대로 15년 전 개관 당시, 미술 작품 전시가 아닌 무용·퍼포먼스 등을 결합한 대규모 종합 예술 프로그램에 나섰다.

경계를 없애는 게 백남준 정신인 만큼, 음악·춤·극 등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품어내는 포괄성을 상징하는 행사였다. 당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없었던 시절인 만큼, 국내 미술관으로서는 파격 행보였다.

이 실장은 “현대미술의 높은 문턱에서 벗어나, 탈 권위적이고 모든 장르에 열려있는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글·사진=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백남준 작품 ‘퐁텐블로’.
기획전 ‘사과 씨앗 같은 것’ 전시 공간.
백남준 작품 ‘버마 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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