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문신 거장 품고 예술을 나누는 곳 '작가 미술관'
현재 경남에는 공립 작가미술관 두 곳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 2015년 개관한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이하 이성자미술관), 그리고 1994년 사립미술관으로 개관 후 2003년 창원시에 기증돼 공립 딱지를 붙이게 된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이하 문신미술관)이다.
두 미술관 모두 각자의 색깔이 뚜렷하지만, 들여다보면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이성자(1918~2009)와 문신(1922~1995)은 모두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꽃 피우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두 작가는 지금 미술관이 들어선 지역이 아닌 전남 광양과 일본 사가현 다케오에서 각각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진주와 마산으로 이주한 뒤 이곳을 평생 마음의 고향으로 여겼다.
각 지자체가 이들 작가를 ‘세계적인 거장’이라고 내세우며 작가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열악한 환경에 놓인 점도 비슷하다. 두 곳 모두 별도 조직 없이 일개 팀 단위 소수의 인력만으로 굴러가고 있다. 이성자미술관은 진주시 문화예술과 내 시설운영팀 중 일부, 문신미술관은 창원시 문화시설사업소 내 문신미술관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당연히 미술관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식 관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문신미술관은 문신의 배우자인 최성숙 화백이 명예 관장으로서 미술관이 방향성을 잡고 전진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지만, 이성자미술관은 조례에 따라 지자체장이 형식적으로 이름만 올려둔 게 고작이다.
전국 공립미술관이 촉각을 기울이는 문화체육관광부의 3년 단위 ‘공립미술관 평가 인증’ 대상에 관장 둔 미술관만 포함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는 만큼, 두 미술관 모두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두 곳 모두 작가미술관으로서 더 많은 이들에게 작가를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적은 인력이 일당백의 업무를 수행하며 어제보다 조금 더 빛나는 오늘의 미술관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이성자미술관은 이성자 화백이 생전에 진주시와 미술품 기증 협약을 체결하면서 탄생했다. 하지만 2015년 개관 당시 협소한 전시 공간과 함께 관장은 물론 학예사도 없는 열악한 환경으로 유족 측 거센 반발을 산 바 있다.
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전히 관장 자리는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그 외 여건은 차츰 개선되고 있다.
지난 2019년부터 학예사 1명을 배치한 데 이어 최근 추가 학예사 채용 절차도 마무리하면서 12월 중순부터는 2명의 학예사가 함께 미술관을 꾸려갈 예정이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지난해 5억 원의 추가 예산이 편성되면서 대규모 특별전 기획은 물론, 처음으로 작품 구입비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성자 초기 유화 작품 ‘영원한 유동성’을 새롭게 구입하면서 개관 이래 줄곧 376점에 머물러 왔던 소장품 수를 377점으로 늘렸다.
윤다인 학예연구사는 “올해도 소장품 구입 예산을 확보한 상태로, 내년으로 이월해 더 많은 작품을 대상으로 구입을 검토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꾸준히 이성자 작품을 비롯해 가치 높은 미술품을 수집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족과의 관계가 변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현재 이성자 작품의 상당수는 저작권과 함께 그의 삼남이 운영하는 이성자기념사업회가 가지고 있다. 미술관 측은 2015년 개관 당시 많은 아쉬움을 표했던 사업회 측에 2018년 재개관을 기점으로 꾸준히 연락을 취하며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윤 학예연구사는 “점차 미술관 기능을 갖춰가는 상황이 여러 경로로 전해지면서 유족분들께서도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고 계신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월 10일 진주시가 시민의 날 기념식에서 이성자를 ‘진주시민상’ 수상자로 선정했던 당시에는, 그의 장남이 대리 수상자로 나서 미술관 개관식 이후 처음으로 진주를 찾기도 했다.
이성자미술관은 앞으로도 진주를 대표하는 이성자를 조명하는 작가 중심 미술관이라는 본분과 함께 시민들의 문화 향유를 돕는 시립미술관의 역할을 병행해 나갈 계획이다.
그간 개최하지 않았던 학술 강연도 새롭게 추진해 이성자의 가치를 조명하는 데도 더욱 힘을 쏟을 계획이다.
윤 학예연구사는 “다채로운 자료를 바탕으로 이성자에 대한 연구가 계속 파생될 수 있도록 학술대회로 밑거름을 조성해 보려 한다”며 “학예 인력도 새롭게 추가되는 만큼, 이성자에 대한 연구 기능을 차근차근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마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가에 자리 잡은 문신미술관은 문신의 땀방울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공간이다. 작가 별세 후 혹은 생전에 작가와 지자체 간 협약이나 선양 사업 일환으로 지어지는 여타 작가 미술관들과 달리 문신이 15년의 세월에 걸쳐 한 땀 한 땀 직접 설계해 만들었다. 미술관 앞마당 바닥 타일 배치부터 건물의 형태와 배치, 연못과 잔디밭까지 모두 문신이 숙고해 건립한 만큼, 그 공간 자체가 문신의 ‘마스터 피스(걸작)’라 불린다.
문신이 직접 지은 사립미술관에서 시작한 미술관은 개관 1년 만에 작가가 별세한 뒤, 고인의 유언에 따라 지자체로 환원되면서 시립미술관이 됐다.
어느 작가 미술관보다 작가의 향기가 짙게 드리워진 미술관은 그 특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발걸음에 나서고 있다.
정서연 학예연구사는 “최근 타 시립미술관을 보면 작가미술관이 아니더라도 수원시립은 여성, 포항시립은 철 조각 등 각자 정체성을 가지고 운영하는 곳이 많다”며 “문신미술관 역시 우리만의 색깔을 살려 공립미술관으로서 입지를 다지려 한다”고 했다.
사실 문신미술관은 낮은 접근성과 함께 턱없이 부족한 예산 문제에 언제나 직면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종 공모 사업에 도전해 엄두를 내기 힘든 과제도 차근차근 수행하고 있다.
창원시 누리집 부속 공간 느낌을 주던 구식 누리집은 문화체육관광부 국비 사업을 통해 지난 7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공모를 통해 게임과 친숙한 세대가 자연스럽게 문신의 작품 제작기를 엿볼 수 있도록 하는 타이쿤 게임 ‘플레이 문신’을 개발한 것도 이채롭다. 현재 플레이스토어 등 ‘창원마산문신미술관’이라는 이름의 앱으로 출시돼 있다.
지난해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공모 사업을 통해 작품 2000점 이상을 DB 목록화하거나 금이 간 석고 원형을 복원했다. 올해는 문체부 전시정보 수어해설 영상제작지원사업에 선정돼 미술관 소개와 주요 작품 해설 영상을 제작한 상태로, 12월 중 누리집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부족한 예산으로 쉽지 않은 사업들을 구성원들이 발품 팔아 따낸 공모로 수행하는 모양새다. 인력 부족 문제 역시 구성원들이 일당백으로 여러 업무를 소화하며 극복해 나가고 있다.
현재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정 학예연구사가 미술 작품 보존에도 활용할 수 있는 문화재수리기능자 보존처리공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그 일환이다.
정 학예연구사는 “내년은 미술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문신 아카이브를 새롭게 준비하는 한편, 구술 채록 등을 준비하고 있다”며 “더 많은 시민에게 문신을 알릴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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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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