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부자마을 감나무
[경일춘추]부자마을 감나무
  • 경남일보
  • 승인 2023.11.3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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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 시인·진주문인협회 감사
이미화 시인·진주문인협회 감사


부자 감나무가 있다는 지수면 승산마을을 찾았다. 승산마을은 부자들의 태생지로 유명하다.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GS 허만정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100대 재벌 중 30명을 배출한 곳이다. 이 곳은 600년의 전통을 가진 마을 뒤로는 방어산, 앞으로는 남강이 휘감아 흐르는 배산임수형이며 닭이 알을 품고 부화를 기다리는 금계포란형이다. 그래서 흘러들어온 남강물이 한데 모였다가 빠져나갈 땐 천천히 나가니 재산이 저절로 모여 부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곳. 문득 부자 감나무는 어떻게 다를까, 얼른 보고 싶어 마음이 설렌다.

부자 감나무가 있는 효주원은 허만정선생님의 호를 따서 지은 공원이다. 모든 면민들이 편안하게 쉬어 갈 수 있도록 공원을 만들면 좋겠다는 어머니 유언에 따라 여섯 째 아들이 조성했다. 공원을 들어서니 밝고 환한 곳에 감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가난한 마당이든 넉넉한 마당이든 우람하게 서서 배고픔을 달래주던 나무. 2006년 후손들은 공원을 조성하고 기념수를 찾다가 늘 고향을 생각하던 부모님 같은 그 감나무를 생각해 냈다. 공원의 한 쪽 구석에는 효주선생님과 여덟 아들을 상징하는 아홉 개의 네모난 돌판이 박혀있다. 가장 어둡고 한적한 곳에 있는 아홉 개의 돌판을 보니 베풂을 드러내지 않는 승산마을 부자들의 마음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나를 위해서는 한 평의 땅도 헛되이 쓰지 마라’ 효주선생님의 유언이다. 학교를 짓고 후학을 위한 일에는 아낌이 없었다. 또 소작농이나 하인들에게도 베풂을 실천하는 분이었다. 겨울이 오면 일이 없는 소작농들을 위해 방어산 돌을 가져오게 하고 삯을 지불했다. 그냥 돈을 주면 자존심이 상할 수 있으니 배려를 한 것이다. 그 돌이 모여 일만이천 봉을 이루었다하여 승산마을 금강산으로 불린다. 우물은 안채에서 멀리 떨어진 담장 근처에 있다. 농사일을 마치고 온 사람들이 편하게 씻을 수 있도록 그들이 사는 공간 가까이 우물을 파게 했다. 이런 것이 진정한 배려가 아닐까. 나에게는 인색하지만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품을 내어주던 이곳 부자들의 정신을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눈대중으로, 감나무가 선 땅이 한 평쯤 되어 보인다. 작은 땅에서도 열매를 모두 내어주고 잎마저 내려놓는 가지들이 가을 햇살에 눈이 부시다. 내 것을 아낌없이 나누고도 칭송을 바라지 않던 부자마을 사람들, 그 마음 만분의 일이라도 닮고 싶어진다. 감나무 가지를 잡은 손끝에 온기가 돈다. 누군가를 위해 내 것을 내어준다는 것이 꼭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라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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